지난 22일 문재인 대통령의 대선 공약인 고위공직자비리수사처(공수처) 설치를 위한 여야 4당의 합의안에 대한 여론의 시선이 곱지 않다. 정작 국회의원 자신들은 기소권 대상에서 제외시켰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문 대통령의 구상에서도 한참이나 후퇴됐다.

홍영표 더불어민주당·김관영 바른미래당·장병완 민주평화당·윤소하 정의당 등 여야 4당 원내대표는 이날 선거제도 개혁안과 공수처 설치, 검·경 수사권 조정 등을 ‘패스트트랙’(신속처리안건 지정)에 올리는 방안에 대해 전격 합의했지만, 제1 야당인 자유한국당을 뺀 모양새가 좋지 않다.

기존 선거제·개혁법안의 패스트트랙 지정 논의는 공수처 기소권 부여 여부에서 제동이 걸린 바 있다. 민주당은 찬성을, 바른미래당은 반대를 표명하면서 패스트트랙 지정 논의 자체가 시작도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민주당이 기존 입장에서 한발 물러나 공수처에 부분 기소권을 주는 조정안을 수용하며 극적으로 타결됐다.

여야 4당 합의안엔 공수처는 수사권과 영장청구권을 갖지만 기소권은 판사, 검사, 경찰 경무관급 이상이 기소 대상에 포함된 사건에 대해서만 행사할 수 있다. 공수처가 수사한 사건 중 대통령 친‧인척, 국회의원 등 다양한 주체들이 엮인 이른바 ‘권력형 비리 사건’이 있다고 해도 검찰과 법원, 경찰 연루자에 한해서만 소(訴) 제기가 가능하다.

이는 당초 문 대통령이 구상했던 방향과도 정면으로 대치된다.

공수처의 수사·기소 범위를 장차관, 판·검사, 국회의원, 청와대 고위직 등 고위공직자와 대통령 친인척 비리행위로 제시했던 문 대통령의 기준은 사실상 무야유야 됐다. 그래서 국회의 이번 합의안을 두고 이른바 '누더기 공수처'이자 ‘밀실 합의’라는 비판이 나온다.

국회가 만든 공수처 설치법에서 국회의원은 기소 대상에서 제외시켜 김영란법(부정청탁금지법)을 데자뷰했다는 말도 나온다.

국회가 지난 2015년 공직사회에 만연된 부정청탁의 관행을 뿌리 뽑겠다는 취지에서 도입한 김영란법이 논의 과정에서 국회의원을 배제했던 행태를 되풀이하고 있어서다. 고위공직자의 부정부패 근절을 목표로 한 공수처 설치법에서조차 기소권 대상에서 자신들을 제외한 ‘셀프 혜택’을 누리려는 검은 속내가 드러난 것이다.

그럼에도 이번 합의안을 만든 여야 4당 원내대표들은 대통령 친‧인척이나 국회의원에 대해 검찰이 불기소 처분할 경우 공수처가 법원에 재정신청 권한을 줬기 때문에 문제될 게 없다는 입장이다. 일단 공수처 설치가 우선이고, 명시적으로는 수사권과 기소권을 100% 다 주지는 못해도 공수처에 사실상의 기소권을 부여했다는 논리다.

지금까지 집계된 7000여명의 공수처 수사 대상 중 기소권 행사 대상인 판·검사, 경무관급 이상 경찰이 5100여명에 이르고, 나머지 대통령 친인척과 고위공직자, 국회의원 등은 재정신청권을 줬기 때문에 충분한 보완 대책이 마련돼 있다는 주장인데, 여전히 이번 합의가 ‘셀프 혜택’이라는 지적을 덮을 만큼의 명분이나 설명이 될 수 없다.

무엇보다 판·검사, 경무관급 이상 경찰은 수사 관련 업무를 하는 사람들이라는 점에서 검찰의 기소권을 배제해 공수처에 안겨줬다는 사실은 자명하다. 누구에게나 특혜가 제공됐다면 문제될 게 없다. 하지만 자신들이 속한 국회의원직을 예외적으로 설정한 뒤 객관적인 합의라고 주장하니, 이를 바라보는 국민의 시선은 불편하기만 하다.

공수처 설치는 물론 시작이 중요하다. 그렇다고 해 기소권에만 매달릴 필요는 없었다. 공수처 설치에 대한 국민적 합의도 없이 정권의 입맛에 맞는 방향으로 가닥을 잡았다는 점은 다시 한 번 곱씹을 대목이다. 대통령 친·인척과 정부 고위직도 문제지만 22일 공수처 법을 마련하는 국회의원들의 ‘셀프 예외’는 해도 너무하지 않는가.

대통령 스스로 공수처 제한 범위에 들어가겠다고 하는데 국회의원들이 ‘셀프 개혁’을 앞세워 자신들만 미꾸라지처럼 빠져나가려는 법안을 국민 누가 받아들일 수 있겠는가. 국회는 지금이라도 공수처 설치의 의미부터 되돌아봐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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