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원네이션'은 프랑스 대혁명 상황 속 의회가 국민들을 구하는 역할을 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사진=세미콜론스튜디오>

[이뉴스투데이 여용준 기자] 21일 개봉한 프랑스 영화 ‘원네이션’과 지난해 1월 개봉한 영국 영화 ‘다키스트 아워’는 닮은 구석이 있다. 

각 영화는 자국 역사에서 가장 큰 사건(프랑스 대혁명, 덩케르크 철수 작전)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거대한 사건 속에서 바람 앞에 촛불 같은 운명에 놓인 국가를 배경으로 위기를 극복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두 영화가 닮은 점은 위기를 극복하는데 가장 큰 활약을 하는 집단이 바로 ‘의회’라는 점이다. ‘원네이션’은 왕정에 대한 반발과 외세 침략을 극복하려는 의회의 논의를 다루고 있다. 

‘다키스트 아워’는 윈스턴 처칠(게리 올드만)을 주인공으로 덩케르크 해안에 고립된 자국군을 구하기 위한 그의 활약을 보여준다. 특히 처칠과 의원들의 대립이 생생하게 묘사돼있다. 

즉 이들 두 영화는 초기 의회 분위기와 역할을 보여주는 작품이다. 그렇다면 영화가 묘사하는 초기 의회는 어떤 모습인가. 결론부터 말하자면 그 모습은 굉장히 치열하다. 

2차 세계대전 중 영국군은 덩케르크 해안에 고립돼 많은 젊은 병사들이 목숨을 잃을 위기에 처한다. 윈스턴 처칠 수상과 의회는 이 위기 속에서 가장 합리적인 결정은 무엇인가를 두고 깊은 고민을 거듭한다. <사진=유나이티드픽쳐스인터내셔널코리아>

의원 간 설전은 시간에 관계없이 길게 이어지고 방청석에서도 거침없이 의견을 보탠다. 물론 그들 중 일부는 사리사욕을 위해 정치적 판단을 하기도 했지만 위기 앞에서 가장 합리적인 답을 찾기 위한 고민이 의회 활동의 중심이다. 

사실 개인적으로 두 영화는 ‘국회’에 대한 생각을 바꿔놓은 작품이다. 어린 시절에는 다른 사람들처럼 “정치인은 왜 맨날 싸울까”라며 불만을 나타냈다. 그러나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국회는 원래 말로 싸우는 곳이다. 

국민을 위해서 더 나은 길이 무엇인지 자신의 이념과 논리에 기초해 주장을 펼치고 상대를 설득시키는 곳이 국회다. 물론 여기에는 ‘국민을 위한 정치’라는 전제가 깔려있어야 한다.

‘국민을 위한 정치’라는 것이 정당하게 기능을 하는지 이 글에서 결론을 내리진 않겠다. 이 글의 요지는 인공지능(AI)에게 정치를 맡기면 어떻게 될지 상상해보는 것이다. 우선 AI가 정치를 하는 것이 가능한지부터 살펴봐야 한다. 여기서 말하는 ‘정치’는 우선 국회의 주요 활동으로 한정짓도록 한다.

국회의 기능은 △법을 만들거나 바꾸고 △예산안 검토와 확정 △예산 사용을 포함한 정부부처에 대한 감시 등이 있다. 

우선 입법활동에 대해서는 국민의 실시간 주요 통계, 국민 요구 그리고 모든 법에 대해 학습시킨다면 법안을 만드는 것은 어렵지 않다. 다만 법과 통계, 요구를 모두 데이터화 해서 학습시키고 오류를 최소화하는 과정은 꽤 시간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예산안 검토와 확정은 체계만 마련한다면 인간보다 더 빠른 속도로 처리할 수 있다. 정부부처에 대한 감시 역시 전자정부 역할을 강화한다면 국정감사까지 갈 것 없이 실시간으로 감시가 가능하다.

자유한국당 의원들이 20일 오후 국회 본회의장에서 열린 비교섭단체 대표연설에서 정의당 윤소하 원내대표가 선거제·개혁법안 관련 나경원 원내대표를 언급하자 항의 표시로 퇴장하고 있다. [연합뉴스]

방대한 양의 자료를 검토하고 분석하는 일은 사람보다 AI가 당연히 낫다. 그런데 AI가 국회를 대신한다면 예상 밖의 문제가 하나 해결된다. 바로 정쟁(政爭)을 볼 일이 없게 된다.

앞서 말한대로 기자는 국회에서의 싸움은 불가피하고 필요한 일이라고 믿는다. 다만 그 싸움 때문에 국회 고유의 기능이 마비되는 일은 있어서는 안 될 일이다. 현재 정치혐오를 느끼는 많은 사람들은 국회가 ‘싸워서’ 혐오스런 것이 아니라 ‘싸우느라 일을 안 해서’ 혐오스런 것이다.

만약 AI가 국회활동을 하게 된다면 법안이나 예산안 처리 속도도 빨라지게 되며, 이른바 지역구를 위한 ‘쪽지 예산’도 사라질 수 있다. 부가적으로 오류가 발생하지 않는 한 일을 하지 않을 일은 없다.

그러나 단점도 분명 존재한다. 행정과 사법, 입법기관은 여러 가지 감시체계를 가지고 있다. 당연히 국회에 대해서도 의원에게 무적의 권한을 주는 것이 아닌 감시체계를 마련하고 있다. 여당과 야당의 역할은 이런 면에서도 기능을 한다. 

그런데 AI가 국회 일을 대신하게 된다면 국가 핵심기관이 누군가에 의해 사유화 될 가능성도 있다. 이를 막기 위해 기존의 여·야와 다른 새로운 견제 시스템을 마련해야 한다. 이것 역시 오랜 시행착오를 거쳐야 할 것이다. 

그리고 그동안 오랜 진통 끝에 나왔던 법안이 AI를 통해 쉽게 나와버리면 법안 자체에 대한 소중함도 덜할 것이다. 과거 LP 시절 음악 자체가 귀했던 것과 달리 스트리밍 시대에서 음악이 패스트푸드에 가까운 것과 같은 이치다. 

‘원네이션’이나 ‘다키스트 아워’에서 보여준 치열한 의회의 모습은 인간이 스스로 인간의 운명을 결정하는 귀한 풍경이다. AI가 정치를 하게 된다면 인간의 운명을 기계에게 맡긴 느낌이 들 것이다. 

20일 오후 국회에서 열린 자유한국당 의원총회에서 나경원 원내대표와 참석한 의원들이 여당과 일부 야당이 수적 우위 앞세워 다수의 횡포 다수의 독재로 제1야당 고립시키고 선거제·개혁법안 패스트트랙을 추진한다고 주장하며 정상적인 의회민주주의를 촉구하는 피켓을 들고 "밀실야합 입법쿠데타 선거법 날치기 사과하라!"는 구호를 외치고 있다. [연합뉴스]

AI가 정치를 하는 것에 대해 가장 합리적인 대안은 의원의 보조 역할을 하는 것이다. 자료 검토와 분석은 AI가 하고 결정은 의원이 하는 방식이다. 이 경우 보좌진은 일자리를 잃게 된다. 그리고 국회의원 역시 지금처럼 많은 사람이 필요하지 않을 수 있다. 

즉 AI가 어떤 형태로건 정치에 참여하게 된다면 정치적 싸움은 크게 힘을 잃고 국회의원 권력도 약화될 것이다. 다만 충분한 안정성이 확보되지 않는 이상 특정인이나 집단에게 엄청난 권력이 돌아갈 수 있다. 

과학계에서는 AI가 발달함에 따라 많은 직업을 AI가 대신하게 될 것이라고 보고 있다. 그 중에는 기자도 포함돼있다. 기자를 포함해 많은 전문직종이 AI에게 일자리를 빼앗기지 않도록 고군분투하고 변화를 꾀하고 있다. 

어쩌면 국회의원과 정치인도 AI에게 일자리를 빼앗기지 않도록 더 열심히 노력하고 쇄신해야 할 것이다. 정치혐오를 느끼는 사람이라면 “AI가 정치를 한다. 그러면 국회의원이란 직업도 없어지겠지”라는 발상이 꽤나 솔깃하게 들릴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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