폼페이오 국무장관과 김영철 노동당 부위원장에서 스티븐 비건 대북정책특별대표와 김혁철 전 스페인대사로 한반도 문제의 실무자가 변경됐다. 지난해 8월에 대북정책특별대표로 임명됐으나 이렇다 할 역할을 맡지 못했던 스티븐 비건(Stephen Biegun)이 2차 북미정상회담의 의제를 조율하기 위해 평양으로 날아갔다. 당초 판문점에서 김혁철과 만날 것으로 예상했었는데, 북한이 평양으로 비건을 불러들인 것이다.

비건 특별대표는 주전공이 러시아 관련 외교다. 미시건대학에서 러시아문학을 전공하고, 줄곧 러시아 관련 일을 해왔었다. 북한 핵문제를 둘러싼 한반도 관련 의제에 대해 깊은 경험과 성찰이 있어 보이지는 않는다.

김혁철 전 대사 또한 생소한 인물이다. 태영호 공사에 따르면 김혁철은 평양외대에서 불어를 전공하고, 2014년 스페인 초대대사로 부임하기 전까지 외무성 9국에서 전략통으로 양성됐다. 그런데 2014년부터 2017년 9월까지 스페인 대사 시절, 북한은 여섯 번 중 세 번의 핵실험을 감행했다. 핵실험 정책결정 상황에서 김혁철은 본국에서 핵실험의 당위성 홍보 지시를 받고 이를 옹호하는 역할만 했을 뿐이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왜 이렇게 서둘러서 핵실험을 했는지, 그 다음 수순에 대한 전략은 무엇인지 등 북한 체제 내부의 핵심적 전략적 판단을 공유하고 있었다고 보기는 어렵다. 현재 알려진 직책은 국무위원회 대미특별대표인데, 국무위원회는 김정일 시절 국방위원회가 명칭을 바꾼 곳이다. 김영철은 청와대 국가안보실과 유사한 국방위 정책국에서 일하며 김정은을 보필했다. 김혁철이 국무위원회에서 이와 비슷한 역할을 할 가능성이 크다. 최선희 부부장도 들어가지 못했던 김정은 집무실에서 김영철과 함께 방미보고를 하고 있는 장면은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 비건과 김혁철이 비핵화 합의 할 수 있을까?
비건은 지난 1월 31일 스탠포스 대학에서의 세미나에서 기조발제를 통해 북한 비핵화에 대한 자신의 입장을 밝혔다. 이것을 국무부에서 동영상과 함께 내용을 공개한 것을 보면, 국무부의 공식 입장, 나아가 2차 북미정상회담을 임하는 미국의 공식 입장으로 봐도 무리가 없을 것이다. 비건의 발표 내용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무엇보다 미국이 지속적으로 강조해 오던 최종적으로 완전하고 검증 가능한 핵폐기(FFVD)의 핵심적인 조치인 핵프로그램 전반에 대한 신고·검증 문제를 정상회담 조건으로 내세우지 않고 있다. 대신에 핵폐기 대상, 핵신고, 검증, 폐기 시간표가 포함된 로드맵을 제시하는 것으로 한발 뒤로 물러났다. 그러면서도 북한에 대한 경제제제의 본격적 해제 문제를 최종단계의 선물로 제시하고 있다. 결국, 북핵 포기 로드맵을 북한으로부터 받는 것이 미국 측 요구의 핵심인데, 과연 북한의 변화무쌍한 협상 전술에 말려들지 않고, 미흡하더라도 이 틀을 지킬 수 있을까?

역으로 북한은 김혁철을 판문점으로 보내서 협상하지 않고 평양으로 비건을 불러들여 협상을 하는 것은 무슨 의미일까? 불어 전공자에다 스페인에서 대사를 지낸 것이 유일한 해외 경험인데, 비건과 의사소통이 편할지도 의문이지 않은가. 북한으로서는 세부적인 북핵 폐기 절차 과정 속에서 상응조치를 조정하는 협상을 임할 의도보다는 2차 북미정상회담 성사가 일차적인 목표가 아니었을까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김혁철은 북핵 협상을 세부적으로 조율하기보다 구체성 없는 비핵화 의지만 반복하며 나머지는 정상회담에서 김정은이 트럼프에게 직접 설명하겠다는 식이 아니었는지 두고 볼 일이다.
결국 설 연휴 마지막 날, 비건과 김혁철 간의 협상은 마무리 되지도 않은 시점에 트럼프 대통령은 국정연설을 통해 짤막하게 2차 북미정상회담의 날짜와 개최국을 발표했다. 지난해 1차 북미정상회담이 구체적인 합의 없이 덜컥 회담 일정부터 확정해서 속빈강정 같은 합의문을 발표로 끝났던 과정과 비슷하게 일이 진행되고 있는 셈이다. 

▲ 김정은이 아닌 트럼프가 위험하다
최근 김영철이 트럼프 대통령에게 한반도에 평화체제가 구축되더라도 주한미군 철수 문제는 거론하지 않겠다고 약속했다고 한다. 이 말을 뒤집어 보면, 평화체제 구축 문제에 대해 북미 간 논의가 이뤄지고 있으며, 적어도 종전선언 정도는 북미 정상 간에 합의가 가능할 것이고, 그럴 지라도 주한미군의 지위와 규모 문제는 북한이 문제 삼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하는 것으로 들린다. 문제는 북한이 거론하지 않더라도 비용이 너무 많이 든다고 틈만 나면 불평하는 트럼프 대통령이 알아서 이 문제를 정리해 주는 사태가 벌어질 수 있다. 지난 3월 대북특사 방북 때, 김정은 위원장은 한미연합훈련 실시를 이해한다고 말했다고 했지만, 6월 싱가포르 북미정상회담에서 트럼프 대통령은 제임스 메티스((James Mattis) 전 국방장관과 사전에 상의도 없이 한미연합훈련 중단 선물을 김정은에게 안긴 사태가 다시금 벌어지지 않을지 걱정스럽다. 그래서 실무협상이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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