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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 갈라치기를 대하는 태도

기사승인 2019.01.07  14:53: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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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둑 좀 두어본 이들이라면 누구나 알만한 ‘갈라치기’란 용어가 있다. 바둑판의 포석 단계에서 변의 상대방 세력권, 중간을 가르는 것을 의미한다. 변의 중간 요처에 한 수를 두어 상대 세력을 두 갈래로 나눔으로써 그 세력의 확장을 억제하는 유효한 수이다. 나아가 자신의 상하, 또는 좌우로 두 칸 벌릴 여유를 맞보기로 하여 우세의 근거를 마련하는 기본적이고도 고차원적인 기술이다. 이러한 갈라치기가 요즘 정치권에서 흔하게 목도된다. 그 행간은 정치적 이득이 목적일 가능성이 농후하다. 바둑 기술인 갈라치기가 정치에서 변종 될 때 정적을 교란시키며 대중의 지지를 득하는 매우 유용한 심리전술로 차용되기 때문이다.

정치가 조금이라도 나아지길 희망하고 조금이라도 더 괜찮은 세상을 원한다면 정치권의 갈라치기에 대응하는 자세는 시민으로서의 자각된 학습뿐이다. 갈라치기는 대부분 음흉한 음모론을 내재하고 있다. 음모론은 합리적 의심과 사실 검증이 뒷받침된다면, 딱히 천대받을 이유는 없다.

문제는 그 배경이 불온하다는 것이다. 우리 사회 음모론은 진영논리에 포획당해 오로지 우리가 옳고 저들이 나쁘며 사악한 배후세력이 존재한다는 불신과 반감에서 기인한다. 사실 검증과 책임 있는 문제 제기라는 기본적 전제 따위는 애당초 의미 없다. 진영논리로 무장된 갈라치기는 대중의 불신을 확산시키기 위해 거세게 작동한다.

그 대표적 현상이 각 정당의 대변인 논평이다. 대변인들의 말은 때론 격하고 때론 확증 편향적이다. 정치의 본령이 그렇다고 해도 시민을 상대로 도를 넘어서는 편 가르기가 다반사다. 이러한 각 정당의 서슬 퍼런 갈라치기에 시민의 판단은 매번 흐릿해진다. 그 부작용으로 정치에 대한 불신과 반감은 더 커졌다. 정치하시는 분들은 못내 억울하시겠지만 시민의 반정치, 무정치, 탈정치 성향은 대게 정치권 탓이 크다.

주지하다시피 바둑의 갈라치기는 형세판단의 오류와 조급함에 쫓겨 뜬금없는 곳에 돌을 뒀다가는 오히려 상대 세력을 키워주는 우를 범한다. 오히려 되치기로 불계패를 당할 수 있다. 이런 현상은 정치권에서도 연동된다. 정치적 소신과 철학보다 영혼 없는 처세로 진영 카르텔의 갈라치기에 과잉 동조하는 이들을 간혹 보게 된다. 그러나 이들도 되치기를 당한다. 정치생명은 길지 않다. 믿기지 않겠지만 내가 경험한 바로는 선 굵은 이념 정당이 아니고서는 보수든 진보든 기성정당의 행태적 차이는 그다지 크지 않다.

거칠게 말하자면 그들의 정치적 이윤을 위한 선언적 명분 차이만 존재할 뿐이다. 해마다 연말이 되면 여야가 합심해서 쪽지예산, 지금은 진화한 카톡 예산을 통해 지역구 예산 나눠먹기가 그 단적인 예이다. 채용비리도 예외 없다.

갈라치기의 대표적 수단은 가짜 뉴스로 구현된다. 허황되고 가공된 가짜 뉴스들은 인간의 기대 심리에 의지하고 믿고자 하는 개연성에 호기심을 덧칠하여 제법 사실인 듯 다가선다. 거기에 정치인의 갈라치기가 가세하면 가짜 뉴스는 새의 깃털과 밀랍으로 만든 날개를 달고 태양 가까이 날아오르려다 추락해버린 ‘이카로스의 날개’를 달게 된다. 그 결말은 익히 알려져 있다. 가짜 뉴스는 대부분 그럴 수도 있을 것 같은 상상에다 허위의 MSG를 첨가했기 때문에 반신반의로 출발하여 쓰나미처럼 확산되다가 ‘아니면 말고’로 끝나는 경우가 많다. 이 추악하고 섬뜩한 위선의 비수는 사회 공동체에 정의를 모멸하고 심각한 갈등을 야기한다. 몹쓸 짓이다.

역사 속, 병법에서는 갈라치기 수를 사용하는 반간계, 이호경식지계 등이 있었다. 이 같은 수를 써서 동맹을 허물거나 적의 내부를 교란한 사례는 동서고금의 역사에서 심심치 않게 발견된다.

대표적 사례는 기원전 313년 초나라의 회왕이 진나라, 장의의 꾐에 넘어가 제나라와의 동맹을 파기한 일이다. 장의의 갈라치기에 현혹되어 수시로 동맹을 바꾸는 갈지자 외교를 펼치다가 초나라는 고립과 쇠락을 자초한다. 유럽의 경우, 히틀러는 위장평화 공세로 주변 반독 동맹국들 간의 굳건한 유대를 갈라치기하면서 재군비와 침략전쟁을 수행할 수 있는 시간을 벌었다. 그 결과는 참혹했다.

중국 전국 시대 제나라의 병법가, 손자의 말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유효하다. “최고의 병법은, 사전에 적의 의도를 간파하고 이를 쳐부수는 것이다. 그다음의 방법은, 적의 동맹관계를 분단시켜 고립시키는 일이며, 그다음 방법이 싸우는 것이다.” 오늘날 일부 정치인들이 손자병법을 통달해서인지는 몰라도 정치적 동맹관계를 분단시켜 합리적 세력들을 고립시키는 수단으로 갈라치기는 자주 애용되고 있다. 오늘날 우리 정당 지형의 현실과 잇닿아 있다.

기해년, 새해 벽두에 ‘갈라치기’의 그릇된 행태들을 거론하는 것은 우리 사회 공동체의 회복을 위해서도 꼭 필요한 성찰의 의제이기도 하지만 국민과 국론 분열을 부추기는 기성 정치권에 대한 시민의 엄중한 경고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사실, 우리 국민들은 좌든 우든 관심이 크지 않다. 날로 피폐해지는 경제 현실 속에 먹고사는 생계의 문제가 절실하기 때문이다. 여야 가릴 것 없이 모두가 민생을 위한다고 주창한다.

하지만 역사적 소임을 다한 것으로 그치지 않고 사회운동 경력을 완장 삼아, 자신들의 주장만이 국민을 위하는 것이라는 선민의식으로 보혁 갈라치기를 통해 현세를 호가하는 일부의 정치세력이 있다면, 시대 흐름에 뒤떨어진 반공 논리로 애국보수를 자임한 채, 철 지난 종북 타령과 좌파 척결 레토릭으로, 좌우 갈라치기에 집착하는 일부의 정치세력들이 있다면, 국론 분열과 나라 공동체를 망치는 것은 별반 다를 바 없다.

반듯한 정치인은 국민으로부터의 신의와 정치적 이념의 도덕적 가치를 중요시한다. 이해득실에 따라 좌와 우를 넘나드는 사람들을 선별하는 일은 늘 시민의 몫이다. 자신의 기득권 사수를 위해 포장된 좌와 우, 서로에 대한 공격성 이면에는 이해에 따라 움직이는 인간의 욕심과 욕망이 내재되어 있다. 도덕적 양심과 자기검열에 따라 정도 차이만이 있을 뿐이다. 좌든 우든 덜 나쁜 정치인을 구별하는 것이 중요한 것은 정치를 통해 시민의 고단한 삶을 위로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새해, 정치권의 현란한 갈라치기에 현혹되는 우매한 시민은 되지 말자. 대한민국은 미래를 향해 더 나아가야 되지 않겠는가.

前 노사정위원회 위원
前 한국폴리텍대학 청주캠퍼스 학장
現 중원대학교 교양학부 교수

이현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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