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1일 강경화 외교부장관에게 세간의 이목이 집중됐다. 국회 국정감사에서 드러난 두 개의 이슈 때문이었다. 하나는 9월 평양정상합의의 군사분야에 대한 마이크 폼페이오 미국 국무장관의 불만에 관한 것이다. 다른 하나는 우리정부가 천안함 폭침에서 비롯된 5.24 대북제재조치의 해제를 검토하고 있다는 강 장관의 국정감사 답변이다.

폼페이오 장관이 지난 9월 평양에서 개최된 남북정상회담 합의사항 중 군사합의 부분에 대한 불만을 표출했다는 일본발 언론기사로 비롯됐다. 특히 폼페이오 장관이 우려한 부분은  지난달 평양에서 남북한이 채택한 군사합의서에 포함돼 있는 ‘군사분계선 10~40Km 이내에서 정찰 등 공중적대행위를 중단한다’는 사안에 대한 것이었다. 김영철 노동당 부위원장과 평양에서의 핵협상이 결렬된 지난 7월 2차 방북 직후 귀국길에도 ‘생산적인 대화’를 했다고 점잖게 기자들에게 얘기했던 폼페이오 국무장관이 강 장관에게 강한 투로 남북군사합의를 항의한 것은 미국의 속내를 잘 알 수 있는 부분이다.

▲ 미국은 대북 비핵화 협상력을 낮추는 우리정부의 앞서가는 행동이 불편

그렇다면 ‘폼페이오의 불만’이 내포하고 있는 미국정부의 속내는 무엇일까? ‘지나치게 앞서나가는 한국정부의 대북 화해조치에 대한 불편함’이다. 미국이 북한의 비핵화를 끌어내려는 억제 수단은 군사제재와 경제제재 두 축을 기반으로 한다. 또한, 군사적 긴장완화나 경제제재의 해지 등은 북한의 변화를 유도하는 현실적인 협상카드가 된다. 당연히 협상카드의 파괴력은 제재의 강도에 비례한다. 이러한 점에서 미국은 자신들이 지니고 있는 대북 비핵화 협상카드의 파괴력을 낮추는 한국정부의 대북 화해조치들에 불편할 수밖에 없다. ‘폼페이오의 불만’은 ‘지나치게 앞서나가는 한국정부’에 대한 불편함을 노골적으로 표출한 단적인 예로 보는 것이 적절하다.

미국정부와 우리정부 간의 이러한 불협화음은 근본적으로 양자의 철학적 인식의 차이에서 비롯된다. 미국정부는 북한의 선의를 믿기에 앞서 북한이 핵포기를 결정할 수밖에 없는 전략적 환경을 구축해 나가야 한다고 믿는다. 그리고 북핵협상을 답답하리만치 느리게 진행하더라도 북한을 협상테이블에 계속 앉힐 수 있는 수단을 대북제재로 설정하고 있다. 반면, 우리정부는 북한과의 선의교환에 우선하는 측면이 강하다. 북한이 용기 있게 핵포기를 결단하기 위한 수단으로써 북한을 먼저 격려하고 우리의 화합의지를 보여주는 것에 우선한다. 이 차이는 인간에 대한 성선설과 성악설의 차이만큼이나 근본적인 차이를 가져온다.

▲ 우리정부의 5.24 조치 해제입장 표명은 미국의 가장 민감한 부분을 자극한 행동

5.24 대북제재조치는 2010년 3월 26일 백령도 인근 해상에서 승조원 104명이 타고 있던 우리해군 2함대 소속 천안함이 북한 어뢰에 의해 침몰돼 46명의 전사자가 발생한 사건에서 비롯됐다. 당시 사망한 46명의 군인들은 평화와 안보를 지키기 위해 헌신했던 이 나라의 젊은이들이다. 그들의 희생은 한국전쟁에서 전사한 희생에 비해 결코 가볍게 볼 수 없다. 우리정부에 대한 소박한 바람이 있다면, 지금 비무장지대에서 진행하고 있는 65년 지난 한국전쟁 전사자의 유골 발굴 사업의 중요성만큼, 북한으로부터 천안함 폭침으로 희생된 장병들을 위한 사과를 받는 데에도 관심의 끈을 놓지 않았으면 한다.

5.24 조치의 해제는 국민정서의 문제를 넘어서는 그 자체로 심각성을 지니고 있다. 무엇보다 5.24 조치를 해제하려는 우리정부의 움직임이 미국정부를 크게 자극할 수 있는 요인이다. 미국입장에서는 5.24 조치 해제는 우리정부가 미국이 가지고 있는 대북 협상자산인 경제제재마저도 허무는 행동으로 비쳐질 수 있기 때문이다. 

▲ 섣부른 한미공조 이탈은 역으로 우리가 제재당할 수 있음에 신중해야

따라서 우리정부가 지난 9월 남북정상회담에서 5.24 조치 해제라는 카드를 구태여 꺼내 들 필요가 있느냐는 궁금증이 생긴다. 지금 유엔안보리의 대북제재결의 10여개가 층층이 쌓여 북한을 압박하고 있다. 현 단계에서 5.24 조치 해제는 우리정부가 북한에 ‘화해의 의지’를 표출하는 선언적 기능 이외에는 아무런 순기능을 발휘하지 못한다. 5.24 조치를 해제한다고 해도 북한 선박이 우리 해역 마음대로 드나들 수 있는 혜택 빼고는 북한이 당장 얻을 것이 없다. 북한에 일반교역이나 위탁가공교역을 위한 물품을 반입할 수도 없다. 또한 우리정부가 북한에 대한 신규투자를 허용하더라도 한국 기업은 북한에 1원 한 푼도 투자할 수 없다.

오히려 5.24 조치 해제는 우리정부가 국제사회에 북한의 비핵화를 위한 공조에 앞서 민족 간 화해협력을 우선시한다는 우려를 일으킨다. 이를 가장 우려하는 측은 미국이다. 지난 9월 남북정상회담 직후 미국 재무부가 국내 시중은행에 북한사업 진행현황을 점검했다는 사실은 이미 미국이 우리정부의 ‘앞서가는 행동’을 우려하고 단속하고 있음을 시사한다.

지난 9월 우리 대통령의 평양방문은 그 나름대로 의미가 있을 수 있다. 남북한이 한 겨레로서 서로 믿고 신뢰를 이어간다면 한반도의 평화체제를 정착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드러냈다는 점에서 그렇다. 그렇지만 다른 한 편으로는 우리정부가 북한의 비핵화를 위한 국제사회와의 공조를 뒷전에 뒀다는 깊은 인상을 남겼다는 아쉬움도 든다. 5.24 조치 해제와 같이 북한에 환심을 사기 위한 카드의 뒷면에 우리사회가 국제사회로부터 신뢰를 잃거나, 심하면 유엔의 경제재재 대상으로 지목될 수 있음도 미리 고려했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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