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9월 5일 정의용 국가안보실장을 단장으로 한 5인의 특사단이 평양을 방문하고 돌아왔다. 파견단 구성은 적절했다. 올해 3월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4시간 이상을 대화했던 인물들을 다시 파견함으로써, 김 위원장의 미세한 표정 변화도 포착하도록 한 것이다.

특사 파견 전날, 우리 대통령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50여분 긴 통화를 나눴다. 청와대 대변인 브리핑에는 빠져있었지만, 백악관 대변인은 FFVD(최종적이고 완전하게 검증된 비핵화)를 이루기 위한 노력을 포함해 최근의 한반도 상황을 논의했다고 밝혔다. 북핵 폐기의 첫 단계로서 핵 활동 검증에 대한 미국의 의지와 집중력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그런데 우리의 협상전략에는 아쉬움이 남는다. 정의용 실장은 성남비행장을 떠나기에 앞서 세 가지 협상의제를 제시했다. ➀ 9월 정상회담의 의제와 일정 ➁ 판문점 선언 이행 등을 포함한 남북관계 발전 방안 ➂ 비핵화 및 평화정착 방안이다. 남북정상회담 일정과 의제가 첫 번째다. 과연 그럴 필요가 있었을까?

김 위원장은 폼페이오 국무장관의 방북 취소와 시진핑 주석의 방북 취소로 외교적 입지가 곤궁하다. 남북정상회담이 간절한 쪽은 우리가 아니라 북한이다. 이번 특사 방북의 전략적 목표가 북한의 태도를 바꾸고 적어도 백악관의 무거운 공기를 밀어내고자 했다면, 김 위원장의 입에서 북한 비핵화의 첫걸음인 핵 신고의 대상과 일정을 끌어냈어야 했다.

만약, 우리의 중재 외교가 끝내 실패한다면 어떻게 될까? 방북 특사가 들고 온 북한의 메시지가 미국의 회의론을 돌리기 미흡하고, 북한이 그토록 원하는 종전선언 합의와 경제 제재 완화 조짐이 없다면 앞으로의 정국은 어떻게 변화될까?

▲ 외교뿐만 아니라 총체적 ‘외통수’ 

첫째, 우리 대통령의 지지율 50%선이 무너질 가능성이 크다. 우리 사회에는 저출산, 청년실업, 부동산, 빈부격차, 중앙-지방 격차, Me-Too와 몰카로 확산된 양성 갈등 등 해결해야 할 과제가 산더미 같다. 어느 하나 쉽게 해소될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우리 대통령은 고용창출과 사회갈등 해소 등을 위해 열심히 동분서주하고 있지만, 국민의 기대에는 아직까지 미흡하다는 게 컨센서스다. 남북문제가 그나마 기대해 볼만한 대목이다. 또한, 남북관계의 긴장과 갈등 해소와 평화체제 정착을 위한 대통령의 노력이 그나마 추락하는 지지율을 일정부분 받쳐주고 있다. 그런데 ‘한반도 조정자론’이 비핵화를 비롯한 한반도 평화정착을 추구하는데 한계가 있음이 드러난다면, 그 실망감은 지지율의 급격한 추락으로 이어질 수 있다.

둘째, 우리 정부의 대북정책이 ‘민족공조’라는 외통수로 빠질 수 있다. 대통령은 광복절 경축사에서 “남북관계 발전은 북미관계 진전의 부수적 효과가 아니라, 남북관계의 발전이야말로 한반도 비핵화를 촉진시키는 동력”이라고 선언했다. 마치 북미관계가 어려워진 오늘의 상황을 미리 내다본 듯, 한미공조가 아닌 독자적으로 갈 수 있다는 의지를 천명한 것이다. 정책 범주에 전략적 인내가 포함된다면, 또 하나의 대안이 될 수 있겠지만, 남북한 간 가시적인 움직임이 있어야 한다고 철썩 같이 믿는 정부에게는 ‘민족공조’ 밖에 선택지는 없다. 이에 대한 국제사회의 반발은 커지고 민족공조의 반작용도 커진다. 현재 상황으로만 보자면 민족공조의 다른 이름은 반미다. 구호와 표현이 다르게 세련될 수 있으나, 핵심은 반미다. 어느 순간 도심에서 ‘한반도 평화를 해치는 주범은 미국’이라는 구호가 나돌지도 모른다.

▲ 외통수는 외통수를 낳을 뿐 

셋째, 가장 우려되는 부분은 미국의 경제제재다. 미 상원은 대북은행업무를 제한하는 법안과 대북에너지 공급을 차단하는 법안이 표결만을 남겨놓고 있다. 두 법안 모두 3자 제재조치(secondary boycott)를 강화할 목적이다. 8월에도 미국은 세 차례에 걸쳐 러시아, 중국 등에 대한 제재를 부과했던 바 있다. 스티브 므뉴신 재무장관은 “제재 위반 결과는 최종적이고 완전하게 검증된 북한의 비핵화를 달성할 때까지 유지될 것”이라는 말을 반복하고 있다. 미국의 재무부의 업무처리 방식은 매우 고지식하다. 정무적 판단과는 거리가 멀다. 의회 법안에 대한 행정명령을 철저히 수행하는 데 집중한다.

한국조차도 대북제재에서 예외일 수 없다. 전 세계를 대상으로 하는 미국의 대북제재 조치에 예외를 인정할 경우, 미국의 독자 제재는 솜방망이가 된다. 한국이 미국의 경제제재의 대상이 된다면 우리 경제가 감당할 피해는 상상하기 싫다.

끝으로 정부가 북한 문제를 둘러싸고 미국과의 공조 분위기가 약해지면, 이는 자연스럽게 한미동맹의 약화로 이어진다. 이를 만회할 방안으로 정부가 준비한 전략이 다자안보체제 구축이다. 이는 역대 모든 정부가 외교전략으로 검토해 왔지만, 실현되지 않았다. 그만큼 어렵다. 우리 대통령도 8.15 경축사에서 ‘다자평화안보체제’ 구축 의지를 밝힌 바 있다. 그러나 유럽에서의 유럽안보협력기구(OSCE), 동아시아의 아세안지역안보포럼(ARF) 등의 사례를 보면, 그 실현의 관건은 현실적으로 패권국의 의지에 달려 있다. 한마디로 미국의 의지가 가장 중요한 데, 미국우선주의를 모토로 ‘힘을 통한 평화’(peace through strength)를 추구하는 트럼프 행정부에서 다자안보는 불편한 레토릭에 불과하다.  

▲ 원칙적인 한미공조 강화가 오히려 협상력과 유연성을 높이는 길 

결국, 현재로서는 대한민국의 국익을 위한 선택은 의외로 ‘고리타분하게 들리는’ 한미공조다. 물론, 미국의 모든 가치에 순응해서는 안 된다. 모든 국가가 이기적이고 자국의 이익만을 추구하듯 우리나라도 철저히 우리의 이익에 집중해야 한다. 그러나 미국의 전략적 이익이 우리의 전략적 이익과 방향이 같을 때, 우리는 이를 활용할 필요가 있음은 강조할 필요도 없다. 진정한 비핵평화를 위한 남북한 관계 진전의 기회는 다시 올 수 있다. 이 기회를 앞당기기 위해서라도 한미공조는 전혀 새롭지 않지만, 지금으로서는 가장 효과적인 해법이다. 또 우리 대통령과 정부에게도 많은 유연성을 제공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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