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토교통부가 제2외곽순환선인 '안산~인천 고속도로' 건설 사업을 재정사업으로 전환하겠다고 밝힌 것을 두고 민간 기업의 아이디어를 도용한 '사업 가로채기'라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사진은 지난해 개통한 제2외곽순환선 '인천~김포 고속도로'의 모습.

[이뉴스투데이 유영준 기자] 수도권 제2외곽순환선인 ‘안산~인천 고속도로’ 건설을 앞두고 논란이 일고 있다. 당초 사업성이 없다고 판단해 손을 뗐던 정부가 민간 기업이 아이디어를 활용, 경제성을 높이자 입장을 바꿔 재정사업으로 추진하겠다고 나섰기 때문이다. 해당 기업은 아이디어 개발 등으로 이미 수십억원을 투입한 상태다. 때문에 밥상은 민간 기업이 차리고 정부가 알맹이만 빼먹는 격 아니냐는 비판이 나온다.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은 최근 국회에서 열린 국토교통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안산~인천 고속도로를) 민자로 건설 시 통행료 부담이 크다”며 “재정사업으로 전환해 공공성을 강화하겠다”고 밝혔다.

국토부는 지난 2015년 안산~인천 고속도로 건설 사업의 예비타당성조사를 실시한 결과, 경제성 부족 판정(B/C 0.78)을 내렸다. B/C는 비용 대비 편익을 분석한 수치로 일반적으로 1.0에 근접하거나 넘어야 사업성이 있는 것으로 판단한다.

정부가 손을 놓고 있던 이 사업의 경제성을 끌어올린 건 다름 아닌 민간 기업이었다. 민간 건설 기업 A사는 지난 2015년 8월부터 1년에 걸쳐 수십억원의 자금을 투입해 설계 최적화를 추진해 이 사업의 B/C를 1.1까지 끌어올린 후 국토부에 사업 제안서를 제출했다. 1.0에 근접하기만 해도 사업성이 있다고 판단되는 만큼 획기적으로 수치를 끌어올린 셈이다.

이 사업에 책정된 사업비는 무려 1조3550억원에 달한다. A사 한 관계자는 “제안서를 제출하기 위해 사업을 검토하고 설계하는 데에 보통 공사비의 0.5%가 들어간다”며 “사업비만 1조원이 넘는 공사이기 때문에 대책 마련에만 50억 정도가 소요됐다고 보면 된다”고 말했다.

 

[위치도] 재정사업 전환을 앞두고 있는 안산~인천 고속도로(붉은색).<사진출처=국토부>

 

국토부는 민간 기업 기술 아이디어를 빼먹은 것도 모자라 예비타당성조사 재실시도 시행하지 않기로 했다. 사업 추진이 늦춰질 수 있다는 이유를 들고 있지만 결국 민간 기업의 기술을 활용한 적격성 심사 결과를 그대로 활용하겠다는 셈이다. 김 장관은 “예비타당성조사를 실시하지 않고 민간이 한 적격성 조사를 활용할 것”이라며 “국무회의에서 결정을 하면 할 수 있다”고 말했다. 국가재정법에 따르면 도로·항만·공항·철도 등 교통시설과 같은 사회간접자본의 경우 사업비가 1조 이상이면 예비타당성조사를 거쳐야 한다.

업계 안팎에선 정부의 아이디어 도용이 아니냐는 비판이 나온다. A사가 경제성을 끌어올리기 위해 만든 대책을 정부가 그대로 가져다 쓰는 것은 민자 사업 추진을 기대하고 사업제안서를 준비해 온 민간 업체의 신뢰를 배반한 비윤리적 행태라는 것이다.

국토위 소속 김현아 의원은 “민간 기업이 수십억을 투자한 아이디어를 그대로 가져다 쓰는 비윤리적 행태를 보이면 앞으로 어떤 사업자가 민자사업을 하려고 하겠느냐”며 “아이디어 도용과 관련된 법률 소송 등 논쟁이 발생할 소지가 있다”고 발언 수위를 높였다.

이에 대해 국토부는 국민 편익을 고려한 조치라고 해명했다. 국토부 관계자는 “민자 사업의 적격성 조사와 재정사업의 예비타당성조사 모두 경제성 부분의 타당성을 검토하는 만큼 운용지침과 내용이 사실상 같다”며 “이를 활용하면 사업 추진을 빠르게 할 수 있다. 국민의 편익을 고려하는 조치”라고 설명했다. 결국 A사 입장에서는 막대한 돈을 들여 경제성을 끌어올린 대책을 눈뜨고 코 베기 식으로 국토부에 넘겨주게 되는 셈이다.

한국개발공사(KDI)에서 진행 중인 이 사업의 적격성 조사 결과는 3월 안에 나올 예정이다. 김 장관은 적격성 심사 결과에서 만약 민자 사업 적격으로 결론이 나도 재정 사업으로 추진하겠느냐는 질문에 “그렇다”고 답했다. 이와 관련 국토부 한 관계자는 “적격성 심사 결과를 그대로 따라야 하는 규정은 없다”며 “주무관청이 판단해서 할 수 있는 조치사항들은 판단할 수 있다”고 말했다. 적격성 심사 결과에 관계없이 재정 사업으로 추진하겠다는 의지를 내비친 것이다.

A사로서는 문제를 제기할 여지가 있지만 무작정 국토부와 각을 세울 수만은 없는 상황이다. 앞으로 추진해야 하는 사업들이 국토부와 얽혀있기 때문이다. 정부가 내놓으라면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내어줄 수밖에 없는 처지다.

A사 관계자는 “(20일 국토위 전체회의에서의) 김 장관 발언이 문제가 좀 있다고 판단돼 어떻게 대응할 것인지 논의 중”이라면서도 “앞으로 국토부랑 여러 가지 사업을 추진할 수 있는 만큼 각을 세우기는 조심스럽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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