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정도는 돼야 재건축 해줄 것인가”… 정부가 안전진단을 강화하면서 다수 단지들의 고심이 깊어져 가고 있다. 사진은 서울 용산구의 한 낡은 아파트 단지 전경. <사진=유준상 기자>

[이뉴스투데이 이상헌·유준상 기자] 정부의 안전진단 강화 조치로 재건축조합은 물론 건설사들의 불만이 임계치로 치달았다.

재건축초과이익환수제도, 조합원 지위 양도 규제 등 각종 규제가 난무한 상황에서 이번 안전진단 강화 조치는 사업에 불확실성을 높일뿐더러 재건축 추진 단지들의 사업 의지를 꺾고 있는 상황이다.

26일 도시정비업계에 따르면 이번 안전기준 강화로 건설사들은 재건축사업이 낙타가 바늘을 통과하는 것보다 어려워졌다"는 한숨과 함께 "지금까지 30년이던 재건축 연한 규정이 유명무실해졌다"는 분석을 내놓고 있다.

D건설사 정비사업팀 한 관계자는 "건설사들은 보통 사업 초기 단계부터 수주 계획을 정하고 사전 홍보에 나서는데 주택부문의 계획을 다시 짜야 할 판"이라며 "당장 매출에는 타격은 없겠지만 수주가능성이 낮아질 수 밖에 없다"고 토로했다.

정부의 강화조치 골자는 재건축 사업 허용 여부를 평가할 때 구조안전성 배점을 20%에서 50%로 높이는 반면, 주거환경은 40%에서 15%, 시설노후도는 30%에서 25%로 낮추기로 했다는 점이다. 

B건설사 구조기술부문 한 전문가는 "아파트 콘크리트 기본 수명이 50년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저층형 노후 아파트들의 경우 고층보다 승인을 받기 더욱 어려워졌다"며 "결국 아파트가 무너질 정도가 되지 않으면 재건축을 하지 못하게 된 셈"이라고 말했다. 

국토부의 이번 규제 조치는 재건축 아파트가 서울 강남권 집값의 불쏘시개 역할을 한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다. 하지만 최근 수도권 지역의 주택수요가 늘어나는 요인은 1970~80년 개발시대 마구잡이로 지어진 아파트들의 감가상각 속도가 상대적으로 빠르기 때문이다. 

최현일 한국열린사이버대학교 부동산학교 교수는 "좋은 주택 공급을 늘려야 하는 상황에서 억제하는 정책은 바람직하지 않다"며 "시장원리에서 벗어나 공급에다 수요를 맞추려는 정책은 항상 불안요인으로 작용한다"고 말했다.

반면 치열한 경쟁을 뚫고 분양사업권을 따낸 건설사들에게는 호재로 작용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H건설사 한 관계자는 "물량으로 나오는 재건축 단지가 희귀해지면서 진흙탕싸움이었던 수주전이 더욱 혼탁해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번 강화조치에 따른 최대 피해지는 재건축 갓 연한을 채웠거나 연한이 임박한 단지가 될 것으로 보인다.

현재 재건축에 뛰어들었지만 안전진단 전 단계에 머무른 사업지는 서울에만 10만3822가구에 달한다. 양천구 목동아파트 14개 단지 2만6000여 가구, 송파구 잠실 올림픽훼밀리타운, 아시아선수촌아파트 등 8263가구, 올해로 3만여 가구가 재건축 연한을 충족하는 노원구 등이 대표적이다.

재건축 안전진단은 추진위, 조합 등 공식적인 추진 주체가 성립하기 전에 이뤄지기 때문에 대게 주민들이 자발적으로 입주자대표회의, 예비 추진위원회를 구성해 비공식적으로 진행된다.

안전진단 조정 비율. <자료제공=국토부>

본지 취재 결과 지난 24일 기준 양천구 목동은 14개 단지 중 4단지 한 곳만 안전 진단을 신청했다. 송파구는 가락우성1차와 미륭아파트가 이미 안전진단 용역을 시작해 한숨을 돌렸다. 아시아선수촌아파트와 풍납극동아파트는 용역업체 발주를 공고했다. 올림픽훼밀리타운은 올해 12월, 올림픽선수기자촌아파트는 내년 1월에야 재건축 연한이 가능해져 안전진단에 돌입할 수 있다. 사실상 대부분의 단지가 개정안을 피해갈 수 없는 형국이다.

가락우성1차 재건축 예비 추진위원장은 "우리 단지는 이미 지난해 11월 안전진단 발주를 진행, 현장실사를 마치고 안전진단 신청을 한 상황이어서 강화법을 적용받지 않는다"며 "송파구 내 안전진단 심사위원의 심의를 기다리고 있는데 4월경 나올 예정"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이미 안전진단 용역을 진행하고 있는 단지들도 안심할 수 없다는 지적이 나온다. 만약 안전진단 보류나 재검토 판정이 나오게 되면 새롭게 적용된 시행령이 적용될 가능성이 높아지기 때문이다. 

재건축 인허가를 담당하는 지자체들도 정부의 이번 조치로 안전진단 통과 비율은 매우 적어질 것이라 보고 있다. 송파구 주거재생과 주무관은 "특히 구조만 놓고 봤을 때 문제가 미미한 강남권 단지들의 통과 가능성은 매우 낮은 게 현실"이라고 말했다. 

안형태 대치쌍용2차 재건축 조합장은 "구조 비중을 50%로 증가시킨 것은 주거의 질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조치"라며 "생활 인프라는 구조보다 훨씬 빨리 손상되는 점이 간과됐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철근, 콘크리트 등 구조 중심의 평가는 생활환경이 열악한 단지들의 고통을 더욱 가중시킬 것"고 덧붙였다.

양천구 목동에서는 시민단체도 반발에 나섰다. 소방방재 시설이 미비한 목동신시가지아파트에서 총 93건의 화재가 발생하는 등 대형 화재로 인한 인명피해 발생 우려가 커 도시정비와 주거환경개선이 시급해졌다는 지적의 목소리다.

양천발전시민연대는 “최근 포항 지진 이후 내진설계가 되지 않은 아파트들의 안전이 심각한 위협을 받고 있고 목동아파트는 단지 내 차량 보유자의 절반도 주차할 수 없을 만큼 주차공간에서 화재 발생 시 소방차 진입로조차 확보가 어렵다"고 말했다.

'건물이 무너질 정도가 아닌 한' 새 아파트를 세우는 게 사실상 불가능해지면서 주민들이 최근 잦아지는 지진의 잠재적 피해자가 됐다는 우려도 크다.

국토부 최근 통계에 따르면 내진설계 대상인 전국 공동주택 30만7597동 가운데 18만5334동만 내진설계가 이뤄졌다. 인구 과밀화지역인 수도권 지역 공동주택 내진설계 비율은 30~40%대에 불과하다.

1988년부터 내진설계 기준이 제정되기 전까지는 이를 강제할 법은 없었기 때문에 현재 30년이 경과한 재건축 대상 건축물 대부분이 지진 발생에 무방비한 상태다.

성남 분당, 고양 일산, 부천 중동, 안양 평촌, 군포 산본 등 경기도 1기 신도시 역시 1900년대 초반에 지어졌더라도 실제로 사업승인은 1988년 이전에 받은 아파트들이다.

국토부 시뮬레이션에 따르면 서울 중구에서 규모 6.5의 지진이 일어나면 전국에서 사상자 11만5200여명과 이재민 10만4000여명이 발생할 것으로 예측됐다. 규모 7.0 지진이면 67만명의 사상자가 발생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강남구 논현동 한 주민은 "재건축은 탐욕이 아니라 주거복지와 안전 문제인데 거꾸로 된 규제를 내세우며 국민의 생명에 대한 고려는 전혀하지 않고 있다"며 "내진설계가 돼 있지 않고 25년이 경과한 공동주택은 안전진단과 관계없이 재건축 시행여부를 결정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 여러분의 제보가 뉴스가 됩니다. 각종 비리와 부당대우, 사건사고와 미담, 소비자 고발 등 모든 얘깃거리를 알려주세요

이메일 : webmaster@enewstoday.co.kr

카카오톡 : @이뉴스투데이

저작권자 © 이뉴스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