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0년대 독일 조선업 위기 당시 생산 대안을 제시한 근로자는 생존했으나 나머지는 떠났다. 사진은 독일 브레머 불칸 조선소 타워크레인 전경.

[이뉴스투데이 이상헌 기자] 국내 조선업 구조조정이 가시적인 성과를 거두지 못하고 있는 가운데 1980~90년대 침체를 이겨낸 독일 노조의 역할이 새삼 조명받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이 최근 올해 1분기 안에 '조선업 혁신 성장 방안'을 내놓겠다고 약속했으나, 한계기업 처리가 늦어지면서 한국의 노조도 독일노조의 사례를 배워 구조조정에 적극적으로 동참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정부는 금융 논리뿐 아니라 지역경제에 미치는 영향을 고려한다는 것이 입장이지만, 구조조정이 미뤄지면서 '골든타임‘을 놓치는 게 아니냐는 우려 때문이다.

백운규 산업부 장관은 "앞으로 모든 구조조정 문제에서 산업부가 주도하는 모양새를 취하고자 한다"고 장담했지만, 중소조선소에 대한 금융지원은 여전히 막힌 상황이다.

또 최종구 금융위원장이 "산업부가 역할을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면서 힘을 백 장관에 힘을 실어준 것이 오히려 은행들의 정부 눈치 보기를 자극한 것이 아니냐는 볼멘소리도 나온다.

현재 금융투자업계는 전체 산업 측면에서 경쟁력 강화를 위해 '큰 그림'이 필요하다는 입장이지만 구조조정의 시기를 놓칠 경우 낭패를 볼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중소조선소에 당장 필요한 것은 장밋빛 희망이 아니라 'RG'(선수환급보증) 기준 완화'라는 것이다.

따라서 미래의 조선·해양산업의 허리 역할을 맡을 중소·기자재산업을 튼튼하게 육성하기 위해서라도 독일을 벤치마킹한 노동개혁이 무엇보다 시급하다는 것이 업계 전문가들의 주장이다.

독일정치경제연구소 조사에 따르면 1980~90년대 독일 조선업 구조조정 당시 고용을 유지할 수 있었던 근로자는 '생산 대안을 마련하고 일자리를 보조한 근로자', '정리해고 대신 향상훈련을 받을 수 있었던 근로자', '회사를 살린 근로자'였다.

당시 독일 조선소의 상황도 한국과 유사해 대형조선사들 대부분이 1970년대 초반 유조선 붐이 닥치자 경쟁력이 축적돼 있던 특수선 부문을 포기하고 대형선으로 옮겨갔으나, 한국 등 신흥국들에 가격 경쟁력이 뒤처져 파산에 이르렀다.

19세기 유럽 최대 조선소로 알려진 브레머 불칸(Bremer Vulkan AG)이 동독지역의 조선소를 매입하며 사업을 확장했으나 1997년 문을 닫았고, 해양탐사선, 발전소필터시설 등 특수선으로 다각화 전략을 펼친 블롬포스사(Blohm+Voss)는 생존했다. 

1982년 이 같은 제안을 내놓은 것은 독일 금속노조로 기술과 자본 부족 이유로 사용자에게 수용되지 않았으나 블롬포스사가 경영방침을 전환하면서 현실화됐다.

당시 고부가가치 특수선으로 시장차별화를 추구한 마이어 조선소(MEYER WERFT)도 살아남았다. 1795년 설립된 이 조선소는 1980년대 중반 위기가 닥치자 크루즈선 건조에 특화하는 공격적 경영을 펼쳤다.

브레머 불칸사 한 관계자는 "1990년대 한국과 일본에 대응하기 위해 기업인수합병을 통해 기업의 규모를 키우고 집중성을 높여 위기를 돌파하려는 경영전술이 실패한 후에 방향을 선회했다"고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노·사·정·학 네트워크 전략도 독일 조선·해양산업을 살린 요인으로 꼽힌다.  

조선·해양산업은 콘체른이 이끄는 항공·우주·자동차 산업과 달리 중소기업이 다수 포함되는 특성을 가져 독일 정부는 중소기업이 대기업과 경쟁에서 불리한 위치에 서지 않도록 연구개발·디지털화 지원을 적극적으로 전개해 왔다.

정미경 독일정치경제연구소장은 "독일의 사회적 시장경제는 산업의 발전을 시장과 기업의 몫으로 배정하고 국가는 더이상 유능한 기업이 아니라는 모토로 공정한 경쟁을 보장하는데 있다"며 "당시 독일노조는 산업구조조정의 방향과 대안을 제시하고 경쟁력 강화를 위한 국가조선·해양컨퍼런스에도 주도적인 역할을 했다"고 말했다.

한편 한국의 조선 분야 인건비는 일본과 비슷한 수준으로 중국의 2배에 달하나 노동생산성은 일본에 미치지 못하고 있다.

조선업계 한 관계자는 "정부 주도 구조조정 역시 생산현장의 비효율을 제거하고 노동생산성을 높이는 방향으로 전개돼야 한다"며 "생산성이 떨어지는 부문의 적극적인 구조조정과 기술 교육훈련을 병행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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