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뉴스투데이 김희일 기자] 문재인 정부가 추진하는 ‘포용적 금융’ 기조 아래 금융사들도 소멸시효 완성채권에 대한 소각 움직임에 나서고 있다. 은행에 이어 여신업계까지 나서며 모범규준 마련까지 힘쓰고 있다.

하지만, 금융권 일각에선 이같은 ‘부실채권 소각’ 붐이 오히려 이를 악용해 상습적으로 연체하는 채무자들과 금융사들의 이들에 대한 관리 부실에 따른 모럴해저드 위험성만 더 키우고 있는 것 아니냐는 우려의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13일 금융권에 따르면 촤근 여신금융협회는 ‘여신금융사의 소멸시효 완성채권 등 관리에 대한 모범규준 제정(안)’을 만들었다. 이번 모범규준은 오는 22일까지 의견 수렴 등을 통해 최종 확정케 된다.

‘여신금융사의 소멸시효 완성채권 등 관리에 대한 모범규준 제정(안)’상 카드사 캐피탈사 등 금융사들은 소멸시효가 완성됐거나 시효가 완성되는 채권에 대해 일정 기간 내 채무 면제를 해줘야 한다.

소멸시효 중단 조치도 일정금액 이하나 노약자 등 사회적 배려자 등에 대해선 적용치 못하도록 그 조건도 강화했다. 시효 완성으로부터 5년이 경과시엔 해당 금융사가 여신심사 시 차주의 연체이력정보도 활용할 수 없다.

모범규준 마련은 지난해 9월 진행된 소멸시효 완성채권 소각행사의 연장선이다. 총 2조5000억원 규모로 채권을 소각한 당시의 행사를 정례화해 금융권 내 관행으로 정착시키겠다는 뜻이 담긴 것이다. 은행권에선 지난해 10월 이같은 내용의 모범규준을 마련해 내규에 반영한 후 현재 시행중이다.

다만, 이같은 모범 규준 마련이 민간 단체인 협회를 중심으로 진행돼 법적 강제성을 지닌 사안은 아니다. 정부의 정책기조에 발맞춰 금융당국과 협회가 공동으로 마련했다는 점에서 금융사들에게는 실질적 압박으로 작용하고 있다.

향후 금융당국은 소멸시효완성채권 소각 제도화에 이은 법제화에도 나설 방침이다. 소멸시효 완성 채권에 대한 처리를 둘러싼 금융사들이 느끼는 실질적 압박감은 더욱 클 수 밖에 없다.

금융권 일각에선 연체채권 소각 제도화가 장기 연체자에 대해 재기할 기회를 줄 수 있어 좋은 조치라고 공감하지만 여전히 ‘모럴해저드’부문을 우려하고 있다.

소멸시효 중단에 대한 조치가 한층 까다로워지게 되면 결과적으로 소멸시효 중단 없이 채권을 면제해야 하는 상황이 계속 발생할 수 있다는 것이다. 자칫 채무자들 중 일부는 자신의 상황 등을 악용해 ‘5년만 버티면 연체된 빚을 안 갚아도 된다’는 인식으로 확산될 우려가 크다.

소멸시효가 지나 연체채권이 소각된 고객의 경우, 연체이력을 활용할 수 없다는 점도 우려된다. 금융사 입장에선 이점이 큰 부담이다.

금융사들은 업무의 상당부분을 고객 리스크 관리에 두고 있다. 만약, 소멸시효 5년이 지난 채무를 지닌 고객이 심사를 받는 경우 그동안의 연체이력이 남지 않다보니 아무런 제약 없이 거듭 대출을 받게된다. 결국 또 다른 연체 발생을 유도해 악순환이 되풀이 된다는 것이다.

카드업계 관계자는 “오랜동안 고객의 연체관리를 해온 통계상 보통 연체한 고객이 또다시 연체하는 확률이 높다. 특히 금융사들이 5년이 지나 연체된 고객에 대한 아무런 이력도 갖지 못한 경우 그에 대한 리스크 반영이나 고객 관리가 현재보다 더욱 쉽지 않게 될 것이다”고 우려했다.

이어 그는 “연체가 있어도 재활 가능한 고객을 만들어 낼 것인지, 아니면 악용하는 고객을 양산하고 그 피해를 금융사나 나아가 국민들이 지게 될지 여부는 소멸시효 완성채권 관리 방식을 어떻게 할지에 달려 있다. 만약 ‘포용적 금융’ 기조 아래 소멸시효 완성채권에 대한 무조건적 소각이 향후엔 더 큰 금융대란 등의 문제도 야기 시킬 수 있다”고 경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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