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89년 7월 14일 루이 16세의 폭정에 분노한 프랑스 국민은 바스티유 감옥을 점령하고 시민을 대표하는 국민의회를 구성한 후 8월 26일 ‘프랑스 인권 선언’(인간과 시민의 권리선언)을 선포했다. ‘프랑스 인권선언’은 1791년 프랑스 헌법 전문으로 채택되는 등 세계 각국의 헌법에 큰 영향을 미쳤다.

대한민국 헌법 역시 프랑스 인권선언문에 큰 영향을 받았다. 대한민국 헌법 제38조 ‘모든 국민은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납세 의무를 진다’는 조문은 프랑스 인권선언문 제13조 ‘공권력의 유지와 행정상의 비용을 위해 조세는 필연적이다. 조세는 모든 시민들에게 각자의 재산 규모에 맞춰 공정하게 부과되어야 한다’는 조문에 그 뿌리를 두고 있다.

모든 국민은 법 앞에 평등하며 법의 적용에 있어 사람에 따라 차등이 있어서는 안 된다. 조세법 역시 마찬가지다. 모든 국민에게 공평하게 세금이 과세되어야 하고 특혜를 받는 국민이 있어서는 안 된다. 우리는 이것을 공평 과세 원칙, 조세정의 실현이라고 말한다.

대한민국 정부 수립 후 세금 사각지대였던 종교인 소득 과세에 대한 포문은 1968년 이낙선 초대 국세청장이 열었다. 당시 이낙선 국세청장은 “종교인에게 근로소득세를 부과하겠다”라고 공언했다가 종교계의 거센 반발로 인해 주장을 철회한 바 있다.

이후 2012년 당시 박재완 기획재정부 장관이 시행을 공식화했고, 2013년 정부가 법안을 국회에 제출하여 소득세법 개정안이 발의돼, 2년간의 논의를 거쳐 2015년 입법화된 뒤 추가로 2년의 유예기간을 거쳐 2018년부터 시행하게 됐다.

이러한 가운데 올해부터 시행되는 종교인 과세와 관련하여 세금특혜라는 주장과 종교활동 보장을 위해 부득이 하다는 입장이 팽팽히 맞서고 있다.

천주교는 1994년부터 성직자에 대한 급여지급 시 소득세를 원천징수하며 성실납세를 해온 반면, 기독교와 불교계는 일부 종단을 제외하고는 종교인 소득 과세에 부정적인 입장을 견지한 채 종교계의 특수성을 주장하며 세정당국과 지속적이고 소모적인 논쟁을 계속하는 등 종교계에서 조차 입장이 엇갈리고 있다.

이러한 종교인 과세의 핵심골자는 다음과 같다. (2017년 12월 21일 소득세법 시행령 수정입법안 반영)

▲ 과세대상은 종교단체가 아닌 종교단체로부터 수령하는 종교인소득에 한정한다.

▲ 종교인 소득 중 종교인이 종교 본연의 활동에 사용하기 위해서 종교단체로부터 수령하는 종교 활동비는 비과세한다.

▲ 종교인은 기획재정부에서 제공하는 간이세액표에 따라 세금을 계산하여 납부한다.

▲ 다만 종교인 소득 중 비과세 되는 종교활동비는 종교단체의 지급명세서를 제출한다.

▲ 종교인 소득을 세무조사하기 전에 먼저 수정신고를 안내한다

여기서 종교인 과세에서 문제가 되는 사항은 ‘종교 활동비 비과세’와 ‘세무조사 배제원칙’이다.

종교 활동비는 자선・사회적 약자 구제 및 교리 연구 등 종교 본연의 활동에 사용되는 비용이라는 측면을 감안하여 비과세를 적용하는 것이지만 이를 악용해 종교인이 종교단체로부터 본인 개인을 위해 소득을 수령했음에도 종교 활동비라고 주장한다면 비과세를 적용 받게 되는 것이다.

즉, 종교인이 종교단체로부터 수령하는 소득에 대해 과세 또는 비과세 범위를 납세자 스스로 결정할 수 있는 구조가 되는 것이다.

이는 정부가 법으로 엄격하게 제한하고 있는 비과세의 범위를 납세자 본인이 선택할 수 있게 함으로써 납세자에게 면세특권을 준 것이나 다름없게 되어 버렸다.

결국 정부는 종교인에게 ‘종교 활동비 무제한 비과세’라는 유례없는 혜택을 통해 셀프 비과세(Self Tax exemption) 선택권을 부여하여 ‘모든 국민은 납세 의무를 진다’는 헌법 정신에 위배된 반쪽짜리 정책을 시행하게 된 것이다.

또한 종교인 소득에 대해 세무조사를 실시하기 전에 수정신고를 우선 안내하도록 규정함으로써 일반적인 다른 소득자나 사업자에 비하여 엄청난 특혜를 주는 것은 세무조사를 무력화하는 특례 조항으로 비난의 대상이 되고 있다.

정부의 종교인 소득에 대한 50년간 비과세 관행(혹은 방관)은 종교의 자유 입장에서 일부 이해할 수 있다. 종교의 자유 측면에서 보면 정부가 때로는 세무조사권 남용을 통해 종교에 간섭할 여지도 있기 때문이다.

세금의 역사를 뒤돌아보면 프랑스 대혁명 전에는 권세와 부귀를 독점한 왕실과 제1계급인 성직자(종교인), 제2계급인 귀족들은 납세의무가 없고 세금은 오로지 힘없는 제3계급 시민과 농민의 몫일 뿐이었다.

그러나 자유, 평등, 박애(권리)를 기본이념으로 하는 프랑스 인권선언 채택 후 모든 국민은 점진적으로 납세의무를 확대 이행해 왔다.

현재 경제 선진국이라고 일컫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회원 35개국 중 종교인 과세를 시행하지 않는 나라는 우리나라가 유일하다.

경제규모가 세계 10위권에 근접했음에도 그동안 종교인 과세를 방관해 왔고 비로소 올해 1월부터 시행되는 종교인 소득 과세 법안 또한 미봉책에 불과하다는 비판의 목소리가 높다.

납세의무는 모든 국민이 함께 부담해야 하는 것이고, 과세범위는 최대한 넓어야 한다. 소득이 있는 국민은 금액의 다과에 불구하고 자신의 소득에 합당한 세금을 납부하는 것이 공평과세의 원칙과 조세정의에 부합된다. 적어도 납세의무에 있어서 성역과 특권이 있어서는 안 된다.

종교인은 음지에 따뜻한 빛을 전파하는 역할을 한다. 음지를 밝히는 빛의 전도사들이 세금에 대해서도 양지로 나와 떳떳하고 당당하게 세상을 밝혀주길 바란다.

■ 약력
황희곤 논설위원
한양대학교 행정대학원 세무학 석사
서울지방국세청 조사1국 3과장, 서초세무서장 역임
캘리포니아 주립대 CEO과정 부원장/주임교수(現)
세무법인 다솔 부회장(現)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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