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을 듣는 순간 내 귀를 의심하지 않을 수 없었다. 법원이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1심 선고 재판에서 ‘묵시적 청탁’을 인정하며 징역 5년을 구형했기 때문이다.

엄격하게 말하면 묵시적 청탁은 ‘듣보잡’이다.  묵시적 청탁이라는 용어는 형법 교과서 여기저기 뒤져봐도 나오지 않는 말이다.  법원이 ‘명백한 증거가 없다’는 점을 인정하기 싫어 궁색한 표현을 썼다는 생각이 좀처럼 머리를 떠나지 않은 것도 이런 연유다.

논리학적 관점에서 보면 법원이 법적 논증에 눈을 감고  ‘대중에 호소하는 오류’(fallacy of argumentum ad populum)를 저질렀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이 부회장에 대한 명백한 증거가 없는데 법원이 5년 형량을 내린 것은 법정증거주의(法定證據主義)에 정면으로 위배되는 것이다.  ‘법관은 헌법과 법률에 의해 양심에 따라 독립해 심판한다’고 규정한 헌법 103조가 무색할 정도다.

법관은 오로지 증거와 법리에 따라 독립적이고 양심적으로 판단하는 게 의무이자 헌법적 가치를 지키는 것이다. 그러나 재판부가 법과 증거에 의해 판결하지 않고 여론 압박에 못 이겨 재판부 독립성을 훼손했다면 이는 사법사(史)에 큰 오점을 남기는 일이 아닐 수 없다.

이와 함께 이 부회장 재판을 앞두고 일부 정치세력이 마치 인민재판이라도 하려는 모습을 내비친 점도 아연실색하게 만든다. 이 부회장 재판 과정을 TV로 생중계해 달라는 요청이 나온 것만 봐도 이러한 분위기를 느끼기에 충분하다.  이는 국내총생산(GDP)의 20% 이상과 수출의 30%를 차지하는 ‘한국경제호(號)’ 최대 기업 총수의 재판을 희화화(戲畫化) 하겠다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일부 시민단체가 살인범을 포함한 흉악범의 신상정보 공개를 인권 침해라며 극렬하게 반대하면서 국내 대기업 총수는 모든 국민이 지켜보는 가운데 ‘망신주기식 재판’을 하겠다는 얘기가 아닌가.  이러한 왜곡된 자세는 한국경제 주체인 기업에 대한 기본적인 예의가 아니다.

따지고 보면 이 부회장을 최순실 사태의 함정에 빠뜨리게 만든 것이 다름 아닌 준조세(準組稅)다. 준조세는 쉽게 설명하면 법에도 없는 세금이다. 기업이 부담하는 각종 기부금과 성금이 준조세 성격을 띄다보니 이현령비현령(耳懸鈴鼻懸鈴)식이 될 수밖에 없다.

지난 한 해에만 걷힌 준조세가 20조원을 넘어선 점만 봐도 우리나라는 ‘준조세 공화국’이라고 해도 틀린 말은 아니다.  이러다 보니 국내 기업이 ‘동네북’  신세를 면하기 어려운 것은 불을 보듯 뻔하다.

또한 기업과 정부 관계는 ‘죄수의 딜레마’로 점철될 수밖에 없다. 정부가 기업에 대한 각종 인허가, 세무조사, 공정거래위원회 조사 등 서슬 퍼런 칼자루를 휘두르는 데 이에 맞서 싸울 기업이 과연 있을까. 더욱이 국가 최고 권력자가 일개 기업인을 불러 지원 요청을 하는 데 이를 거절할만한 기업이 있다는 말인가.

지금으로부터 29년전인 1988년 5공(共) 비리 청문회에 모습을 드러낸 고(故)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이 “시류(時流)에 따라 편히 살려고 돈을 냈다” “기업이 권력 앞에서 왜 만용을 부리겠나”라고 술회한 대목은 권력 앞에 선 대기업의 초라함을 보여주기에 충분한 장면이 아닐 수 없다.

특히 한국 기업인들에게 배임죄 못지않게 두려운 죄목이 이른바 ‘괘씸죄’라는 것은 삼척동자(三尺童子)도 안다.  이를 증명하기 위해 과거 유신시절까지 돌아갈 필요도 없다. 

국제그룹 양정모 회장은 당시 정권에 돈을 적게 냈다가 괘씸죄로 1985년 그룹이 공중분해된 것은 이미 잘 알려진 사실이다. 지난해에는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이 최순실 일당의 이권개입에 걸림돌이 된다는 이유로 평창올림픽 조직위원장에서 물러난 것만 봐도 권력의 전횡은 예나 지금이나 달라진 게 없다. 이런 분위기라면 기업총수로서는 정부에 찍히지 않기 위해 성금, 기부금 등 ‘보험’부터 들어야 하는 게 당연한 일이 아닐까.
한국 경제는 약 30년 사이 10배 이상 급성장해 세계경제에서 좀처럼 유례를 찾아보기 힘든 ‘우등생’으로 우뚝 섰다. 한국경제가 이처럼 짧은 시간에 눈부시게 발전할 수 있었던 데에는 잘 살아보자는 온 국민의 열정 못지않게 삼성전자, 현대자동차, SK 등 글로벌 기업이 전 세계 무대에서 흘린 땀 덕분이다.

세계 경제환경이 급변하고 있지만 국내 기업에 각종 명목으로 은근슬쩍 손을 내미는 ‘수금(收金)통치’의 후진적 관행은 전혀 달라진 게 없다. 국회가 지난해 말 ‘농어촌상생협력기금’을 통과시켜 기업으로부터 1조원을 걷기로 한 게 대표적인 예다. 이것뿐 만이 아니다. 정치권은 대형 면세점사업자에게 기금을 걷는 관광진흥개발기금법 등 여러 준조세 관련법을 발의해놓고 있다. 이처럼 기업에게 끊임없이 손을 내밀면서 기업에게 정경유착의 고리를 끊으라고 압박하는 것은 코메디도 이런 코메디가 없다. 

이재용 부회장 판결은 그동안 국민 무의식속에 내재돼 있던 반(反)기업정서와도 거리가 멀지 않다. 그동안 기업인을 상대로 하는 국회 청문회를 보면 경제발전과 사실상 담을 쌓은 여의도 정객들이 대기업 총수를 한 지리에 모아놓고 책상을 치며 호통하고 비하하는 모습을 우리는 여러 차례 목도하지 않았는가.

전 세계에 수 백만 명에 달하는 직원을 두고 글로벌 무대에서 촌음을 다투며 치열한 경쟁을 벌이는 이들 대기업 총수에 한국 정치권은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나 진배없다. 특히 반기업 정서로 무장한 일부 압력단체와 정치권은 터널 비전(tunnel vision)과 ‘나홀로 갈라파고스(고립지)’ 프레임에 매몰돼 급변하는 세상을 제대로 바라보지 못하는 치명적 결함을 안고 있다.

이 부회장 판결이 어떤 결과로 귀결될 지는 아직은 모른다. 그러나 이번 사건이 정치권의 고질적인 수금통치를 없애는 계기가 되어야 함은 두말 할 나위도 없다. 이번 사태를 계기로 여야(與野) 할 것 없이 정치권이 기업인들에게 손을 내미는 행태를 없애야 한다는 얘기다. 이를 위해 현재 국회에서 낮잠을 자고 있는 ‘준조세금지법’을 하루속히 통과시켜야 한다.

또한 당장 눈앞에 다가온 평창 동계올림픽에도 정치권이 대기업에게 지원 협조를 요청하는 모습이 사라지기 바란다. 국민들은 정치권의 향후 행보를 예의 주시할 것이다.

<편집국 부국장겸 생활경제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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