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뉴스투데이 이상헌 기자] '신의 직장'으로 알려진 한국해운조합이 8개월째 선장을 찾지 못하면서 도덕적 해이가 심각해지고 있다. 

16일 해운업계과 관련 단체에 따르면 지난해 12월 9일 이기범 이사장이 돌연 사퇴하는 등 연안해운업계 대표 단체인 해운조합 이사장 자리는 그 동안 바람 잘 날이 없었다. 

세월호 사태를 거치며 해수부 차관, 1급 출신이 '거쳐 가는 자리'라는 공식도 깨졌고, 업무추진비 횡령혐의 및 선박 안전 운항 관리 부실로 이사장이 구속되는 사태도 겪었다. 

정계 출신 후보자가 '정피아 논란'에 휩싸여 낙마하기도 했다. 이런 과정 속에서 해운업계에서는 "도덕성, 전문성 그리고 정책 조정 능력을 동시에 갖춘 인물이 차기 해운조합 이사장에 인선돼야 한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해운업계에 따르면 한국해운조합 이사장의 연봉은 약 2억원. 업무추진비와 각종 부가적인 혜택을 포함하면 3억 원에 상당하는 혜택을 누릴 수 있다. 

금융권보다는 못하지만 2016년 기준 공공기관장 평균연봉 1억3000만원의 약 두 배에 달하는 수치이기 때문에 이 자리를 둘러싼 조합 대의원들과 해수부 관계자 간에 신경전은 항상 치열하다. 

하지만 이런 내분과는 별개로 20~30대 취업준비생들에게 해운조합은 '신의 직장'으로 알려져 있다. 

해기사 출신의 한 취업준비생은 "해운조합에 근무 경험자에게 물어본 결과 해운조합은 신도 모르는 좋은 직장이었다"며 "배를 타며 실습했던 내용, 직무역량과 관련된 해외 연수 내용 등을 빼곡하게 적으며 꼭 합격하고 싶다"는 의지를 불태웠다. 

조직의 수익을 떠받치는 지부별 공제사업(보험사업) 영업을 제외하면(전체 직원의 약 75%) 거의 대부분은 안정적인 경영 지원 업무를 맡으며 정해진 역할만 하면 된다는 게 취업준비생들의 일반적인 평가였다.

지난 1월 이용섭 해운조합 회장은 12월 이기범 이사장 사퇴 직후 이례적으로 기자회견을 열어 해수부 측과 대립각을 세웠다. "해수부에서 추천한 후보를 더 이상 받지 않겠다"는 게 골자였다. 

이에 해수부 관계자들은 "그 동안 조합에서 원해서 해수부 출신을 추천받아 놓고 이제 와서 딴소리 한다"는 반응이 주를 이뤘다. 

대의원들도 “조합의 특성상 해수부와의 교섭이 매우 중요하기 때문에 OB(공직자 출신)를 고민할 수밖에 없는데 이용섭 회장이 호기를 부렸다”는 반응을 보였다. 

이와 관련 해운조합 한 대의원은 "해(海)피아 출신들이 안 된다는 정서가 있다지만 해수부 승인도 못 받을 만한 후보가 꽤 나왔고, 업계 입장에서 큰 득도 안 되는 후보들이 나서서 곤란이 이만 저만이 아니었다"고 토로했다. 

결국 이용섭 회장은 지난 1월 인터뷰를 통해 '해운업계 전문성과 정책 조정능력'을 거론하고 대의원들의 생각을 인정하는 듯한 주장을 간접적으로 내비쳤다.

이 회장은 "열심히 일할 마인드를 가진 능력 있는 해수부 출신이라도 마다할 이유가 없다"며 "해운이 어려운 상황에서 기댈 곳은 정부 정책적인 부분이기 때문에 대정부교섭력, 협상력을 두루 갖춘 인재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해수부 출신들이 이사장을 역임하며 도덕적 해이 문제에 책임 논란을 빚었던 것도 사실이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출신배경이 아니라 '사람'의 문제라는 해석이다.

이와 함께  세월호 참사에 대한 책임을 규명하고 내부 개혁을 위해서는 산업, 해운 경험을 두루 갖춘 검증된 전문가가 필요하다는 것.

이 같은 과제에도 불구하고 8개월째 공석으로 이어지고 있는 해운조합 이사장 자리를 노리는 후보들의 면면을 보면 예전과 다르지 않다. 

해양수산부 고위급 관계자는 "부산 출신 해운사 대표인 A 모씨를 비롯해 포항 출신 B 모씨 등이 유력 후보로 나왔던 것으로 알고, 약 8명 정도 물망에 올랐던 것으로 안다"며 "물류 산업 기관 임원 출신과 육운 회사 임원 출신들도 관심을 보이는 것으로 들었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그는 "이분들이 정말 해운업계를 구조적으로 조망하며 문제 해결 능력을 보일지는 미지수이며, 조합원들의 뜻을 모아 다중이해관계자 간 중재가 가능한지도 동의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김영춘 장관 취임 이후 설립 준비 중인 해양진흥공사(선박금융기관)와 보조를 맞추는 문제, 최근 출범한 한국해운연합(KSP)과의 네트워크 정비 등도 앞으로 해운조합의 과제다. 

해운조합이 수행하고 있는 공제, 보험 업무는 상당 부분 해양진흥공사가 수행하게 될 금융 영역과 겹치는 사안이라 업무 조정도 불가피하다. 

이에 따라 공직 경험과 업계 경험을 두루 갖춘 해운업 전문가가 조직을 이끌며 '해운업 본연으로 돌아가기 위한 구조개혁'을 지휘해야 한다는 것이 업계의 바람이다.

해운업계 한 관계자는 "해운조합이 세월호 참사의 근원지가 된 가장 큰 이유는 '배'에서 관심이 떠나 당장 돈이 돼 보이는 것에만 집중해왔던 점이다"며 "선박·선원 전공은 사실 고도의 기술적 이해가 필요한 분야이기 때문에 조직 내 전문가가 없다면 모럴해저드는 더욱 심각해질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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