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뉴스투데이 서정근 기자] "규제를 적용받는 당사자에게 규제혁신과 관련한 전권을 맡겨두는 것이 온당하다고 볼 순 없습니다. 고양이에게 생선을 맡길 순 없지 않습니까."

여명숙 게임물관리위원회(이하 게임위) 위원장의 이른바 '생선론'은 게임산업 내부의 규제완화 시행과 그 폭을 둔 정부와 규제기관, 기업들 간의 온도차를 드러낸다.

게임산업협회는 게임 아이템 구매한도 상한선 철폐를 '선언'하고 이를 5월 중 실행하겠다고 공표했는데, 여명숙 위원장과 게임위가 "관련한 협의가 없었다"며 제동을 걸어 이를 보류시켰다. 여명숙 위원장이 취임 후 '갑질철폐'와 '규제 합리화'를 주요 과제로 내걸었고, 게임 아이템 구매한도 상한에 원론적인 합의가 이뤄졌던 것을 감안하면 의외의 행보다.

게임위는 이에 더해 "게임 내 거래소에서 이용자들이 현금으로 게임 아이템을 거래할 수 있게 주선한 게임들은 청소년이용불가"라는 유권해석을 내놓아 '리니지2 레볼루션'과 '리니지M' 등 대세게임의 서비스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기도 했다.

문재인 정부 출범 후 규제완화에 대한 기대감이 드높은 상황에서, 이같은 여명숙 위원장의 행보는 업계의 불만을 고조시켰다. 일각에선 여명숙 위원장을 '(시류의 흐름에 홀로 맞서) 장판파를 홀로 지키는 장비' 같다고 평하기도 한다.

"게임 아이템 구매한도에 상한선을 둔 것이 법적 근거가 없는 '그림자 규제'라고 업계에서 주장하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 '그림자 규제'가 도입될 수 밖에 없었던 배경, 그로 인해 관련한 부작용을 어느 정도 완화할수 있었던 것을 부정해선 안됩니다."

영상물등급위원회가 맡고 있던 게임 관련 심의와 규제 업무를 지난 2006년 신설된 게임물등급위원회(게임물관리위원회의 전신)가 전담하게 됐는데, 이는 노무현 정부가 '바다이야기' 사태로 촉발된 게임물로 인한 사행성 확산 우려를 막기 위함이었다.

당시 문체부와 게임물등급위원회의 '압박'으로 게임사가 이용자 연령등급별로 구매한도액을 설정하고, 게임물등급위원회가 이를 심의와 연동시켜서 이의 준수를 사실상 강제해왔다.

여명숙 위원장은 "성인의 경우 게임 내 재화를 구입하는 과정에서 '사치'를 누릴 권리가 있고, 그 사치에 대해 혹독한 대가를 치르더라도 개인이 그 결과를 감내해야 한다고 생각한다"며 "그러나 게임물관리위원회가 '협의'가 필요하다고 한 것은 게임 시장 전반에 녹아있는 사행성을 제거하기 위해 게임사들이 의지와 복안을 가지고 있는지,  규제 완화를 앞두고 실제 이해 당사자인 이용자 집단과 시민사회와 소통했는지를 짚어볼 필요가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또 "확률형 아이템과 관련해 명백한 개선책과 실행 의지가 있고 결제한도 상향이 확률형 아이템과 무관한 것이라면 당장이라도 결제한도를 풀어줄 수 있다는 입장이었다"고 설명했다.

여 위원장은 '그림자 규제'가 게임사의 '탐욕'이 시민사회에 미칠 수 있는 해악의 총량을 감소시키는 역할을 했다고 인식하는 듯 했다. 이는 원치 않은 '타율규제'가 '자율규제'로 둔갑해 10여년간 목줄을 짓눌렀고, 이 규제를 걷어내는게 당연한 권리라고 생각하는 게임사들의 입장과 접점을 찾기 어려운 것이기도 하다. 이를 확률형 아이템문제와 연관지으면 그 괴리는 더 커진다.

여 위원장은 "규제를 개선하려면 우선 공론의 장에 이를 올려 시민사회와 소통하는 과정을 거쳐야 하는데, 구매액 월정액 상한선 폐지의 경우 그러한 과정을 거치지 못했다"고 진단했다. 문체부와 게임물관리위원회, 업계의 논의는 이뤄졌으되 학부모 단체와 게이머들간의 소통은 없었다는 것이다.

"자율 규제는 '내 마음대로' 한다는 의미가 아니라, 이해 당사자들의 사정을 두루 살피고 이들과 소통해 진행해야 하는 것입니다. 규제 완화에 원론적으로 동의하고 큰 틀에서 그 방향으로 논의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규제완화 추진 과정에서 이해당사자들과의 소통은 지금이라도 꼭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규제완화 논의가 PC 온라인 플랫폼 게임에 집중되고 있는데, 기업들은 (별다른 규제가 적용되지 않는) 모바일 게임과의 형평성을 규제완화 필요 근거로 제시하고 있다.

이를 두고 여 위원장은 "역차별을 이야기하는 이들이 있는데 그러면 공평하게 모바일게임에도 온라인게임에 적용되는 규제를 적용하면 되는 것인가?"라고 반문한 후 "역차별이라고 하지만 대형 게임사들은 어려움을 하소연할 수 있는 대관 조직과 언론과의 접점, 이를 유지할 수 있는 재무적 여력이 있는데,  아케이드 게임 업종은 그러지도 못하고 고강도 규제에 장기간 직면해 있는데, 이것이야 말로 진짜 역차별"이라고 역설했다.

또 "흔히 사행성 규제가 업체들이 거둘 수 있는 이윤을 축소하고 이용자들을 보호하는 것으로 인식되는데, 이는 이용자들만 보호하는게 아니라 사행성 영업을 하지 않는 건전한 업체들을 지키는 것 이기도 하다"고 설명했다.

여 위원장이 지적한 것 처럼 아케이드 게임 업종 종사자들이 품고 있는 피해의식은 심대하다. 10여년 전만 해도 아케이드 게임 업종이 전체 게임산업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제일 컸으나, '바다이야기' 사태 이후 지속된 규제 족쇄로 그 규모가 급감한 후 회복될 조짐이 없다.

업종 전체가 '폐족'이 된 후 이들의 이해를 대변할 방법 자체가 없다. 정부와 규제기관이 이들을 바라보는 스탠스도 엄격하고 언론도 이들에겐 관심이 없다.

게임산업이 고성장하며 우리 경제에 미친 순기능이 큰 반면 부작용에 대한 일반의 우려와 질책 또한 크다. 게임산업을 규율하는 법·제도는 두 측면 사이에서 균형을 맞추기 위해 도입된 것들이나 완전치 않다.  법·제도 중 '이유없는' 것은 없으나 규율 대상이 되는 객체들 중 온전히 승복하는 경우도 없다.  불합리 혹은 불균형하다고 이야기 되는 사안들이 적지 않다.

"게임물관리위원회는 현 시점에서 이용자와 건전 기업들을 함께 보호하는데 주력할 것입니다. 장기적인 안목에서 게임산업을 규율하는 법제도를 개선할 필요가 있습니다. 진흥과 규제를 담당하는 기관이 꼭 나눠져 있어야 할 이유도 없다고 봅니다.

게임산업과 관련한 난맥상이 잘 풀려, 언제가 아케이드 게임을 종목으로 하는 e스포츠도 정착될 수 있는 상황이 오길 희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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