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아무 말 대잔치’라는 용어가 유행인 모양이다. 네이버 국어사전에 따르면 ‘뇌에서 필터링을 거치지 않고 생각 없이 막 내던지는 말’을 뜻한다고 한다. 긍정적 의미로 쓰이는 용어는 아니다. 하지만 달리 생각해 보면 스트레스 해소 효과는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말하기 전에 매번 이것저것 계산을 하려면 사는 게 얼마나 피곤하겠는가. 그래서 오늘은 기자도 아무 말 대잔치에 동참하려고 한다. 쉽게 말해 “횡설수설할 테니 용서해 달라”는 얘기다.

기자는 5월10일자 ‘문재인 시대와 마르크스 역사 법칙’이라는 글에서 문재인 대통령을 ‘만든’ 사람들에게 고언(?)을 건넨 적이 있다. “대통령을 만드는 것과 국정 운영에 참여하는 것은 별개”라는 요지였다. 공교롭게도 그 직후 ‘삼철’ 중 이호철, 양정철 두 사람이 국정 불참을 선언했다. 이호철은 선거 다음날 홀연히 장기 해외여행을 떠났고 양정철은 “제 역할은 딱 여기까지”라는 말과 함께 퇴장을 알렸다. 뒤이어 최재성 전 의원도 “인재가 넘친다”며 이선후퇴에 가세했다. 속으로 ‘멋지다’라는 감탄과 함께 “문재인의 사람들은 뭔가 다를 수 있겠다”라는 기대를 갖게 됐다.

그러나 그 감동과 기대는 이어지지 않았다. 오히려 인사 청문회 과정에서 드러난 일부 인사들의 민낯은 실망감만 안겼다. “문재인의 사람들도 ‘내로남불’이기는 마찬가지구나”라는 한탄과 함께.

그런데 그들의 내로남불에도 종류와 격이 있다. 당사자들은 대개 자신에게 제기된 흠결에 대해 이런저런 해명을 한다. 그 중에는 관점에 따라 수긍하고 넘어갈 만한 해명도 있다. 가령 관행이었던 다운계약서나 정도가 심하지 않은 논문표절 등이 그에 해당될 것이다. 이에 비해 안경환 후보자의 경우는 애당초 ‘해명 불가’였다고 할 수 있다.

더 큰 문제는 아예 해명 자체가 없는 ‘내로남불’이다. 특히 외고, 자사고 폐지와 관련된 일부 인사들의 행적이 여기에 해당된다.

서울교육감 당선 당시부터 외고, 자사고 폐지를 공언해온 조희연 교육감. 정작 그의 장남은 명덕외고, 차남은 대일외고를 다녔다. 노무현 정부 때 교육부총리로 외고 폐지 정책을 추진했던 김진표 국정기획자문위 위원장. 그 역시 본인의 자녀는 대원외고에 보냈다.

그런가하면 조국 민정수석의 딸은 한영외고 출신으로 이공계 대학을 거쳐 현재는 의전원에 다니고 있다고 한다. 외고 학생의 자연계열 진학은 외고의 설립취지에서 벗어난 것으로 비판받는 대표적인 사례다. 조국 수석 본인도 자신의 저서에서 “특목고, 자사고, 국제고 등은 원래 취지에 따라 운영되도록 철저히 규제해야 한다”고 주장한 바 있다.

이들의 모순된 언행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그 답을 듣기 위해 기자가 할 수 있는 질문은 두 가지유형이다. 첫째는 ‘본인의 자녀가 다닌 학교를 폐지해야 한다고 생각하게 된 이유는 무엇인가’이다. 둘째는 ‘폐지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학교에 왜 본인의 자녀를 보냈는가’이다. 둘은 비슷해 보이지만 전혀 다른 각도의 질문이다.

첫 번째 질문에 대해 기자의 둔한 머리가 떠올릴 수 있는 답변은 이런 것이다. 즉, 본인의 자녀들을 외고, 자사고에 보내보니 그 폐해가 크다는 점을 경험했을 수 있다. 가령 아이가 성적 경쟁에만 집착하는 괴물로 변했다든지, 또는 아이가 같은 학교 친구들과만 교감하며 선민의식에 빠졌다든지 하는 것들이다.

하지만 이 경우 그것이 학교의 잘못된 교육 때문이라고 단언할 수 있을까. 애초에 자녀들의 인성이 그릇돼서 빚어진 결과일 수도 있다. 그렇다면 외고, 자사고 폐지의 근거로 삼기엔 부족하다.

두 번째 질문에 대해서는 기자의 머리로는 그럴듯한 답이 떠오르지 않는다. 다만 기사를 검색해 보니 몇 해 전 조국 수석이 모 신문과의 인터뷰에서 나름의 해명을 한 바 있다. 그는 인터뷰에서 “나의 진보적 가치와 아이의 행복이 충돌할 때 결국 아이를 위해 양보하게 되더라”라고 말했다. 대의보다는 부정이 앞섰다는 감성적 해명이다.

하지만 이 해명에 고개를 끄덕이긴 어렵다. 다른 부모들 입장에서는 “나는 아이의 행복을 위해 진보적 가치를 양보했지만 당신들은 진보적 가치를 위해 아이의 행복을 양보해 달라”는 이기적인 얘기로 들리지 않겠는가. 조희연 교육감 등에 대해 ‘사다리 걷어차기’라는 비난이 쏟아지는 이유이기도 하다.

이쯤에서 독자들은 “그렇다면 외고, 자사고에 대한 기자 당신의 입장은 뭐냐”라는 질문을 던질 법하다. 기자의 답은 폐지 반대이다. 이유라면 여러 개를 댈 수 있지만 그 중 가장 큰 것은 중국과의 인재 양성 경쟁이다. 왜 하필 중국이냐고 묻는다면 중국이 우리에게 가장 위협적인 상대이기 때문이다.

중국의 인구는 약 13억7000만 명. 한국(약 5200만 명)의 25배가 넘는다. 확률 상 한국에서 1명의 인재가 태어날 때 중국에선 25명의 인재가 탄생하는 셈이다. 그럼에도 그동안 한국이 산업화에서 중국을 앞섰던 데에는 인재가 될 재목을 어떻게 교육하느냐의 차이가 큰 몫을 했다고 믿는다. 중국은 1993년에 가서야 시장경제 발전을 위한 교육개혁에 본격적으로 나섰다. 한국보다 한참 늦은 시기였다.

하지만 일단 시동이 걸린 후 중국의 교육개혁은 거침이 없었다. 중국은 특히 211공정, 985공정 등 우수대학 육성 프로젝트를 통해 수월성 교육에 박차를 가했다. 지금 중국의 각 분야에서 종횡무진 활약하고 있는 인재들은 그 결과물이다. 이런 중국과 맞서 경쟁하려면 한국도 수월성 교육의 필요성을 인정해야 하지 않겠는가.

여기까지 글을 쓰다 보니 역시 예상했던 대로 횡설수설하는 느낌이다. 특히 외고, 자사고 폐지론자들 시각에선 기자의 논리가 박약하고 허술하게 비칠 것이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어차피 모두에서부터 ‘아무 말 대잔치’라고 선언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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