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정부가 출범한지 한 달이 지났다. 인수위원회가 없는 정부여서 5월 10일 취임 직후부터 정부를 구성하기 시작했다. 17개의 장관 자리 가운데 15개는 후보가 지명됐고 김동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과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은 임명장을 받았다. 나머지 후보자는 청문회를 마쳤지만 청문보고서가 채택되지 않았거나 아직 청문회를 앞두고 있다.

인사청문회는 대통령이 정부를 구성하는 데 있어서 장관의 도덕성과 능력을 검증하기 위해 만들어진 제도다. 최초에는 국무총리, 대법원장과 대법관, 헌법재판소장, 감사원장 등은 국회의 동의를 필요로 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참여정부에서 인사청문회 대상을 장관으로 확대해 현재에 이르렀다. 국회의 동의를 필요로 하지 않지만 국회를 통해 검증받는 절차를 추가한 것이다.

인사청문회를 도입한 이후 무수한 낙마 사례가 등장했다. 그러나 인사청문회는여야간 정치투쟁의 수단으로 변질된 지 오래됐다. 

김대중 전 대통령 당시에는 장상 후보자와 장대환 후보자가 낙마했고, 노무현 전 대통령 당시에는 윤성식 감사원장 후보가 특별한 이유 없이 국회 표결에 가로막혀 임명이 좌절됐다. 김병준 부총리 겸 교육인적자원부 장관 후보는 당시에는 기준에도 없던 자기논문표절을 이유로 끝내 자진사퇴했다. 이 당시 논란으로 2008년부터 자기논문 재인용도 표절에 해당하게 됐으나 학계에서는 여전히 이 기준의 부당성을 지적하고 있는 상황이다. 그럼에도 연구비 수령 등의 목적이 없는 자기논문 인용도 표절이라는 주장이 대세를 이루고 있다.

전효숙 헌법재판소장 후보자의 경우 인사청문회와 국회 동의 절차의 극단적인 폐해를 보여준 역사적 장면으로 남아 있다. 후보자의 도덕성이나 능력과 무관하게 절차 문제로 3개월 넘게 끌다가 결국 후보자가 자진사퇴하면서 마무리됐다.

인사청문회에서 청문보고서가 채택되지 않았음에도 장관을 임명한 사례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노무현 정권 당시에는 유시민 보건복지부 장관, 이재정 통일부 장관, 송문순 외교통상부 장관이 청문보고서가 채택되지 않았지만 장관으로 임명됐다. 야당의 반대사유가 도덕성이나 자질 문제도 아닌 정서적 거부감이 문제였다. 

이후 이명박과 박근혜 정권에서는 청문보고서 채택 없이 임명된 장관의 숫자가 대폭 늘어났다. 이명박 정권에서는 무려 17명이, 박근혜 정권에서는 10명이 청문보고서가 채택되지 않았지만 장관으로 임명됐다. 이들은 도덕성에 문제가 제기됐지만 자진사퇴나 지명을 철회한 후보자에 비해 그 정도가 덜했을 뿐이다. 

이명박 정권 당시 김병관 국방부 장관 후보는 4성 장군 전역 후 무기중개업체 고문으로 재직했고, 위장전입과 부동산 투기 의혹 9개에 공금횡령 의혹 등 다양한 의혹이 제기되자 자진사퇴했다. 김명수 교육부 장관 후보는 부교수와 정교수 승진 시 각종 논문 표절 논란, 제자 석박사논문 표절, 강제 대필 등으로 학술연구비 수령, 외부 칼럼 제자에게 대필 강요 등으로 지명을 철회했다. 정성근 문체부 장관은 서울 강남구 일원동 기자아파트 미등기 전매, 위장전입, 부동산 투기에 대해 청문회에서 완강하게 해명을 하다가 허위로 드러나자 결국 자진사퇴했다.
이처럼 공직자 후보자의 도덕성과 자질을 검증하는 데 있어서 인사청문회는 나름대로 순기능을 담당했다. 

하지만 문재인 정부가 출범 한 달이 지나도록 정부를 구성하지 못하고 있는 가운데 인사청문회가 정쟁의 장으로 변질되고 있다. 청와대와 여당을 상대로 군기잡으려는 야당의 샅바싸움도 치열하다. 이명박, 박근혜 정권 당시에는 여당으로 후보자들을 감싸던 자유한국당과 바른정당 의원들은 문재인 정부를 공격하고 있다. 과거 새누리당을 공격하던 더불어민주당은 여당 입장에서 방어를 하고 있다.

안경환 법무부 장관 후보의 경우 중년 남성의 후진적인 여성관을 비판한 ‘남자란 무엇인가’라는 책이 여성비하로 몰리고 있다. 홍준표 후보의 ‘돼지발정제’에 대해 침묵했던 자유한국당 여성 의원들이 안경환 후보자를 공격하고 있는 상황이다.

그야말로 ‘내로남불(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이 판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문재인 대통령은 강경화 외교부 장관 후보자에 대해 청문보고서 채택을 재차 촉구하는 한편 국회가 보고서를 송부하지 않더라도 임명하겠다는 의지를 밝혔다. 헌법과 법률상 장관 임명은 대통령 권한이고 국회의 동의가 필요치 않기 때문이다. 국민 여론도 강경화 후보자 임명에 찬성하는 비율이 훨씬 높다.

야당은 야당대로 기싸움에 밀리지 않기 위해 김이수 헌법재판소장 임명 동의와 연계할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해법은 없는 것일까? 최종 열쇠는 국민들이 쥐고 있다. 그러나 그 이전에 대의기구인 국회가 국민 여론을 잘 살펴서 인사청문회를 정쟁의 수단으로 떨어뜨리는 행위를 중단할 수는 없을까?

협치는 단순히 국회의 뜻을 반영한다는 의미는 아니다. 그리고 최종적인 협치의 대상은 주권자인 국민이다. 일부에서는 ‘여론정치’를 하자는 것이냐고 반론을 제기한다. 그러면 여론을 무시한 국회는 상관없다는 이야기인가? 아마 그렇지는 않을 것이다.

국회는 하루 빨리 절충점을 찾아야 한다. 대통령의 장관 임명권을 무시해서는 안 된다. 국회의 청문보고서 채택은 동의 절차가 아니다. 언제까지 야당만 할 것도 아니지 않는가?

여야 모두 역지사지를 통해 이번 기회에 공직자 검증 기준에 대한 합의점을 찾아가는 지혜를 발휘하기를 바란다. 여당도 그동안 지나치게 엄격한 기준을 들이대며 자업자득을 만든 측면이 없는지 돌아볼 필요가 있다. 소위 민주진보세력이 한치의 부끄럼도 없는 삶을 살았다는 듯이 엄격한 도덕적 잣대를 휘두른 측면이 없는지 성찰이 필요하다.

앞으로도 인사청문회가 지금처럼 정쟁의 수단으로 활용된다면 인사청문회 폐지론이 대두될 가능성이 없다고 말할 수 없다. 내로남불을 피하기 위한 역지사지가 필요한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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